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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잔다
아이돌의 일상은 딱 두 가지로 나뉜다. 바쁜 스케줄에 잠잘 시간도 부족하거나, 데뷔 이전과 하등 다를 바 없거나. 이 판에 중간은 없다. 존재하는 결과는 세상의 도박보다도 더 극단적인 것들뿐이었다. 물론 그걸 모르고서 시작한 일은 아니었지만 당연하다는 듯 빛을 받지 못하는 다수의 입장에서 수년을 버티다 보면 지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뚜렷한 목표가 있던 연습생 시절의 연습에 비하면 지금은 누구도 알아봐 주지 않는, 조금 더 처절하고 서러운 연습뿐이었으니까. 그나마도 하지 않았다간 지독한 자기혐오의 굴레에 빠질 것이 뻔했으니 차라리 서러운 날이 차악이고 유일한 선택지였다. 열심히 사는 인생이 꼭 저주인 것만 같았다.
해가 환히 비추던 때 습관처럼, 뼈에 새겨진 일상처럼 연습실에 왔다. 지하 연습실인지라 확신은 없었지만 시간을 보니 여명이 어슴푸레 밝아오고 있대도 놀라울 건 없을 터였다.
“형 우리 인트로만 맞추고 갈까요.”
“그러자. 곧 해 뜨겠다.”
연습 영상을 확인하던 성우가 그리 말했다. 옆에 던져지듯이 널브러져 있는 종이엔 그간 정리해놓은 동선이 가득했다. 끝도 없는 공백기에 써 놓은 곡과 짜 놓은 안무만 수십이었지만 막상 컴백을 한다고 하니 다시 새 곡을 쓰게 되는 게 사람 마음이었다. 이번은 진짜 마지막이 될 거라 생각하니 사활을 걸 수밖에 없었다. 앨범 준비과정 전반에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건 재정적 문제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지금은 그리되어 차라리 다행이었다. 마지막이 될 앨범, 온전히 우리의 것으로 채우고 싶었으니까.
*
성공해서 큰 무대에 서고 싶다는 막연한 희망을 구석에 접어놓게 된 건, 글쎄, 이 작은 회사에서 데뷔를 준비할 때부터였을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연습생으로 좁은 사회 안에 갇혀 살았다고 해도 그런 걸 모르진 않았으니까. 흔히들 말하는 중소의 기적이란 것도 있긴 했지만 내가 그 기적의 주인공이 될 거라 기대하고 목 메이는 것도 너무 괴롭기만 해 져버린 지 오래였다. 성공해서, 가족의 자랑이 되진 못하더라도, 그냥 어떻게든 오래 오래 음악 하고 무대에 서고 싶다는 게 다였는데. 그조차도 생각보다 많이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게 하면 할수록 느껴졌다. 결국 성공하지 못하면 음악도, 무대도 끝인 거니까.
얻은 것도, 바뀐 것도 하나 없는 활동을 조용히 끝내고 며칠 지나 누구도 축하해주지 않는 3주년을 맞았을 때의 일이다. 누구 하나 내색하지 않고, 조용한 하루를 슬퍼하지 않으며 끝내려 하고 있었다.
“성운이 형, 우리 한잔할까요.”
“갑자기?”
“우리끼리라도 소소한 축하는 해주고 싶어서.”
거실에서 꺼진 티비의 새까만 화면을 멍하니 바라볼 때 도수가 낮은 술 두 병을 들고나오며 성우가 말했다. 자축만 있는 하루나, 자축도 없는 하루나, 마음이 텁텁한 건 매한가지니 성우는 전자를 택하기로 한 것 같았다. 거절할 이유는 없었기에 건네는 병을 받았다.
“데뷔 삼 주년 축하해요.”
“너도, 삼 주년 축하해.”
가볍게 병을 부딪히고 한 모금 넘기는 눈은 여전히 깊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변함없이.
“전에도 말했던 거지만, 형이랑 같이 데뷔해서 다행이에요.”
“넌 그런 낯간지러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냐.”
“근데 진짜야. 연습생 때도 꼭 형이랑 같이 데뷔하고 싶다고 생각했었어요.”
당장 내일 연습 때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사람인데 그랬어요. 단어 하나 하나에 갖은 정성이 묻어나왔다. 성우의 말은 늘 그랬다. 모든 말에 꼭꼭 눌러 담은 진심이 있었다.
“사실 나 너가 말하기 전에도 알고 있었어.”
“진짜요?”
“나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다 뭐라도 한마디씩 하는데 너 혼자 뒤에서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잖아.”
나 가면 쟤는 어떡하나 싶었어. 진짜 그만둘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물론 내가 성우에게 그렇게까지 음악보다 더 중요한 사람은 아니었을 것 같긴 하지만 어딘가 무너진 게 눈으로 너무 여실히 보여서. 나까지 상실감에 빠지게 해서. 다시 돌아온 데에는 뭐라 하나로 말할 수 없을 만큼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그 안에 성우가 있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다.
*
“성우야, 곡 얼마나 썼어?”
“거의 마무리. 2절 프리 훅만 쓰면 돼요.”
“너 그거 다 쓰면 우리 같이 여행 갔다 올까?”
“갑자기요?”
“그냥, 당일치기로 바다 한 번 보고 오게.”
“음.. 그럼 인천 갈까요? 내가 운전할게요.”
오래 생각한 즉흥적인 여행이었다. 성우가 드라이브하는 걸 좋아한다고, 특히 해안도로 타는 걸 좋아한다고 했을 때 언젠간 꼭 같이 가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여기서 더 미루다가는 평생 못 갈 것 같아서. 이번 앨범 활동이 마무리되면 시간적 여유는 꽤 생기겠지만 드라이브 갈 상태가 못 될 것 같아 굳이 시간이 촉박한 지금이라도 가야 할 것 같았다.
*
목요일 오후의 국도는 한산했다. 점심시간은 한참 지났지만 그렇다고 퇴근 시간대인 것도 아닌 어중간한 시간에 여행을 이유로 차를 몰고 가는 사람들은 아마 우리 둘뿐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 인원 그룹이 아닌 듀오라는 특성상 어딘가에 놀러 갈 때면 늘 둘이었다. 거기에 시간까지 쌓이니 구태여 무언가를 같이 하자라는 말은 생략 된 지 오래였는데. 참으로 오랜만에, 그것도 한창 바쁘고 정신없는 타이밍에 등장한 같이 라는 말의 이유를 내게 되묻지 않은 건 이미 성우도 그 이유를 알고 있기 때문일 터였다.
“형은 어디 가는지 안 궁금해요?”
“딱히. 인천 가는 것만 알면 됐지.”
“내가 다른 데 가면 어떡하려구.”
“원양어선만 안 태우면 됐지 뭐.”
“되게 태연하네요.”
“하루 이틀 일이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일상이었다. 봄의 끝물에 내려오는 햇빛을 받으며 생각해봤다. 남들 눈에는 별나게 비춰질 이 여행을. 다른 사람들은 이별 여행 그 비슷하게 정의 내릴지도 몰랐다. 아무리 좋게 쳐 줘도 결국 끝을 보기에 가는 여행이라고. 뭐, 틀린 말은 아니었다만 맞다고 하기엔 그 약간의 차이가 컸다. 현실을 모두 등지고 살아갈 수는 없겠지만 우리 손으로 0을 만드는 일만은 없을 테니까.
“그래도 나름 브리핑 준비했는데 들어줘요.”
“너 솔직히 말해봐. 어제 설레서 잠은 잤어?”
“기대한 건 맞는데 잠은 잘 잤어요. 아무튼 이번 여행 테마가 있다구요.”
“반나절도 안 돼서 올 건데 무슨 테마까지.”
“그냥 좀 들어줘 봐요. 테마는 ‘남들 하는 거 다 해!’”
“뭐냐 그게.”
“그거 알죠, 원래 여행지는 주민이 제일 모르는 거. 그래서 을왕리 갈려구요.”
“현지인 가이드 기대했는데.”
“어쩔 수 없어요. 거기 해수욕장 쪽에 식당 찾아봤으니까 가서 밥부터 먹어요. 그래도 평일이라 사람은 별로 없을 거예요.”
“메뉴 뭔데?”
“차돌박이 짬뽕.”
“굿초이스네.”
“그래도 믿을만한 옹가이드라니까요.”
*
해를 삼키는 인천 앞바다는 붉디 붉었다. 한참을 걷다 해수욕장 끄트머리로까지 온 탓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손에는 다시 차를 몰고 돌아가야 했기에 술이 아닌 음료수가 쥐어져 있었다. 우리의 입자 때문이 아니더라도, 텅 비어버린 해수욕장 때문이 아니더라도, 저무는 해 만으로도 어딘가 저릿한 느낌이 들게 했다. 노을을 석양으로, 석양을 황혼으로, 황혼을 낙조로. 아무리 많은 단어들로 바꿔봐도 그 느낌만은 덮지 못했다.
“시간 좀 있어서 하루 자고 갔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죠?”
“한잔하고 싶어?”
“그것도 그렇긴 한데, 일몰이 예쁘니까 일출도 되게 예쁘겠다 싶어서요. 물론 바다에선 안 보이긴 하겠지만.”
“나중엔 일출도 보러 가자. 그때는 동해안 쪽으로 날 잡고.”
“그래요.”
조금씩 바다를 물들이던 해는 참으로 빨리도 움직여 벌써 절반이 넘게 내가 보지 못하는 지구의 건너편으로 그 몸을 숨기고 있었다. 바다를 물들이고, 하늘까지 자기의 색으로 물들인 해는 곳 사라져 어두워질 터였다. 천지를 뒤덮어가다 한순간 사라져버려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했다. 이기적이라며 괜스레 태양에게 투정을 부리다 금세 관두고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태양이 사라지면 사라질수록, 시각이 필요를 잃어갈수록 선명하게 들릴 파도 소리였다.
두 사람만이 겨우일 작은 배를 타고서 저 바다를 건넌다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어디로든 도착은 하겠지만 난파되지 않고 도착할 확률은 0에 수렴하지 않을까 싶었다. 목적지 모를 항해는 이미 시작됐는데, 지금 이게 난파인지, 정체인지, 그것도 아니면 목적지에 도착해 내려야만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도착보다는 차라리 난파이길 바랐다. 나와 동승한 크고도 작은 나의 선장은 여기서 내리기엔 아직 갈 곳이 많이 남아서.
무대 하나를 위해 모든 걸 버리며 함께 달려온 시간이 벌써 8년이었다. 서로의 세계에 단둘만 남아버리는 순간은 진작 왔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음악과 춤을 제외하고는 다 남 일이 된 지 오래였으니까. 어쩌면 아이돌의 이름으로 살아왔던 지난 5년간의 시간에 안녕을 고하고 앨범 마무리에 박차를 가하는 편이 더 편할지도 몰랐지만 그러고 싶진 않았다. 그럴 수도 없었다.
그렇지만 만약, 정말로 이게 마지막이 된다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어디로 가게 될까. 이틀 벌어 하루 먹기 위해 살아가더라도 어느 날 문득 지금이 생각나 연락 한 번 해보는 일만은 없길 바랐다. 그렇게 이 시간들이, 서로에게 서로가 좋은 추억으로만 남아 버리진 않았으면 했다.
“성우야.”
하루에도 몇 번이고 부르던 이름이 오늘따라 혀끝에 떫게 걸렸다.
“우리 같이 가자.”
어디든.
분명 우리의 내일은 오늘과 하등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갑자기 성공하는 일도, 지금과는 비교 할 수도 없이 추락하는 일도 없을 테지만 지금껏 그래왔듯 둘이니 그래도 괜찮을 것이었다. 어딜 가더라도 함께이겠지. 그렇기만 한다면 깊은 바다 한가운데의 난파선일지라도 나는 기꺼이 너의 손을 잡고 올라갈 것이다. 널빤지 한 장을 붙들고서도 네게 다른 한 손을 뻗을 것이다.
내가 너 없이 혼자 어딜 갈 수 있겠어. 너는 또 나 없이 어딜 갈 수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