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lting
Written by 일이칠
“좋아해.” “어?“ “좋아한다고.”
오늘도 어김없이 밤 늦게까지 놀다가 성운을 집으로 바래다주던 길이었다. 항상 먹는 체리 주빌레를 입에 달고서. 둘 다 무슨 할 얘기가 그렇게 많은지 신나게 너스레를 떠들다 어느 덧 성운의 집앞에 도착하였다. 집앞에 도착하면서도 떠나보내기 아쉬운 건지 이야기를 더 주고받다가 성운이 먼저 말을 꺼냈다. 야, 나 들어갈게. 제 집 대문 앞에 다다른 성운이 먼저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잘 가. 대충 고개를 끄덕인 성우는 등을 돌렸다. 등을 돌리자마자 아쉬운 느낌이 확 들었다. 뭐 이렇게 시간이 잘 가는지. 동시에 떨어지는 발걸음이 급 무거워졌다. 억지로 발걸음을 떼며 걸어가는데 한 세네 걸음을 떼었을 쯤일까, 성운이 성우를 불러 세웠다. 야, 옹성우!
고갤 돌려 성운을 쳐다보았다. 뭐. 성운이 가까이 오라며 손짓으로 성우를 불렀다. 성우는 내심 기뻤지만 그 손짓을 보고 일부러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성운의 앞으로 다가갔다. 기쁜 표정을 드러내면 눈치 빠른 성운에게 들통날 게 뻔하니까. 게다가 이 각도면 성운에게 더 잘 보일 것이다. 왜. 일부러 툭툭대며 대답하자 성운이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말을 붙였다.
“이 말 듣고 나 피해도 돼. 전교에 소문을 내든 말든 너 알아서 해.” “무슨 얘기인데 그래? 그리고 너 안 피할 거야.” “내 말 들으면 마음 바뀔 거야.”
얼른 말해. 성우가 재촉을 하자 긴장이라도 한 건지 벌벌 떨리는 양손으로 성우의 어깨를 짚었다. 긴장을 풀기 위해 심호흡을 했는데 여전히 심장은 쿵쾅쿵쾅, 시끄러웠다. 이윽고 성운이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좋아해. 그 순간 성우는 제 귀를 의심하였다. 어? 좋아해라니. 분명 제가 잘못 들었을 것이다 싶어 재차 물었다. 그런 저를 부정하는 듯이 성운이 다시 좋아한다고 말했다. 좋아한다고. 성운의 고백은 갑작스러웠다. 그래서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성우는 가만히 서서 아무 말도 않고 성운을 바라보기만 했다. 성운은 그 행동이 거절의 의미인 줄 알고 고갤 푹 숙였다. 미안……. 성운이 짤막한 사과를 남기고 돌아서자 냉큼 정신을 차렸다. 이윽고 대충 제 눈에 띄는 걸 잡았다.
이렇게 제 발로 찾아온 기회인데 어떻게 놓칠 수가 있으랴. 잡고 보니 성운의 가방끈이었다. 성우가 제 가방끈을 잡으며 집으로 들어가려는 절 붙잡자 성운이 고갤 돌렸다. 뭐야? 성우가 미소를 씨익 지으며 너 아이스크림 묻었어, 하고 말했다. 뜬금없는 소리에 성운이 고갤 갸우뚱 기울었다. 툭. 이어지는 성우의 행동에 성운은 제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을 떨어트릴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제 입술 위로 제 입술을 부딪쳐 왔으니까.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갑작스러운 입맞춤인데도 성운은 몸부림을 치지도, 성우를 밀치지도 않았다. 오히려 성운이 완전히 몸을 돌려 성우의 옷깃을 붙잡았다. 성운에게 있어서 이 입맞춤은 18년 인생을 살아오면서 처음 하는 짓이다. 그것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키스처럼 혀를 섞지도 않았는데 가슴이 괜시리 두근거렸다. 그리고 그건 성우도 마찬가지이다. 처음 하는 입맞춤도 아닌데 왜 이리 두근거리는지. 처음 했던 입맞춤도 이토록 가슴이 두근거리진 않았다. 그런데 성운과 하고 있으니, 마치 놀이공원에 처음 놀러온 어린 시절의 저처럼 가슴이 두근거린다.
한 1분 정도 혀를 섞지 않은 채 가만히 입술만 맞대기만 했던 것 같다. 그러다 성운이 먼저 입술을 뗐다. 어스름한 늦은 밤이었지만 석양빛의 가로등 덕분에 성운의 두 뺨이 발그레진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성운이 고갤 숙이며 잠시 침묵을 하다가 말을 꺼냈다. … 장난치지 마. 짐짓 성난 성운의 목소리에 성우가 웃음기를 쫙 빼며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뭘 장난쳤는데?
“뽀뽀했잖아. 나 안 좋아하면서. 그럼 그게 장난이지, 뭐야?” “장난치는 걸 알았으면 밀쳐냈어야지.” “…….” “그리고 나 너 안 좋아한다고 한 적 없는데?”
그 말에 성운이 고갤 조심스레 들었다. 이윽고 반쯤 기대찬 눈빛으로 성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할 거잖아…. 그러자 성우가 아닌데? 하고 대답했다. 좋아한다고 할 건데? 휘둥그레진 채로 성운이 “좋아해…?”라 물었다. 성우가 제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어, 좋아해, 말했다. 그리고 성운을 제 품속으로 이끌었다. 두 팔 벌려 가득 안았는데도 품이 빈다. 품이 너무 비길래 꽉 안았더니 숨이 막히는 건지 성운이 나오라며 발버둥을 쳤다.
깜짝 놀라 얼른 나온 성우가 미안…, 하고 사과하였다. 성운이 잠시 매서운 눈초리로 쏘아보다가 얼굴을 붉히며 물었다. 근데 너 언제부터 나 좋아했어? 그 물음에 성우가 저답지 않게 부끄러워했다. 그를 본 성운이 “으아아! 왜 너까지 부끄러워하는 건데!”라며 부끄러운 티를 팍팍 내었고 성우 역시 덩달아 “몰라! 너도 부끄러워하지 마라고!”라 소리쳤다. 어… 그러니까 제가 성운을 좋아하게 된 게…….
때는 바야흐로 따뜻할 땐 제법 따뜻하고 쌀쌀할 땐 또 쌀쌀한 4월의 어느 봄날이었다. 항상 짧게만 느껴지는 쉬는 시간이 끝나고 한 3분쯤 지나서 담임이 반으로 들어왔다. 처음 보는 남학생을 옆에 끼고선. 그리고 그 학생이 바로 성운이었다. 성운을 처음 보자마자 제 눈에 띈 건 보통 남학생들과 다른 체구. 성운은 정말이지 왜소했다. 그게 어째서인지 성우의 눈길을 이끌었다.
성운은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고 담임이 지목한 자리로 가 앉았다. 성우의 눈길은 자연스레 그쪽으로 가게 되었고 동시에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흠칫 놀란 성우가 황급히 고개를 돌리려고 하다가 성운이 싱긋 눈웃음을 지으며 제게 눈인사를 한 걸 보고 성우 역시 성운을 따라 인사를 하였다. 이것이 바로 성우와 성운의 첫 만남이었다.
첫만남은 그러하였고 본격적으로 친해진 건 게임이었다. 성우는 접속자가 별로 없는, 즉 망한 게임이라 칭할 수 있는 어느 한 게임을 즐겨 하였다. 접속자가 별로 없는 탓에 주변에도 같이 할 사람이 없어 늘 혼자 하곤 한다. 평일에는 시간이 거의 없어 주말에만 할 수 있었고 잠을 일찍 자야 하는 일요일에도 새벽 3시까지 하다가 그제서야 자는 성우다. 그 탓에 늘 한 주의 첫 시작, 월요일만 되면 쉬는 시간은 물론이고 수업 시간에도 졸기 일쑤이다. 성운이 전학 온 지 한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웬일인지 주말도 아닌 수요일에 시간이 남아 돌아서 그 게임을 하게 되었고 덕분에 오늘 수업 시간에도 꽤나 졸아버렸다.
비몽사몽한 정신을 겨우 붙잡고 제 친구들과 함께 점심을 먹은 뒤, 교실로 올라왔다. 바로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고 싶었지만, 그 다음 시간이 전체 학년을 통틀어 히스테리 삼대장에 드는 윤리 시간이기 때문에 책을 준비해야만 했다. 사물함으로 가려다가 성운이 하는 말에 성우는 우뚝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난 검전 재미없던데? 그래서 사람 별로 없는 거 아닌가?” “그래? 난 재밌던데. 그리고 모델링도 꽤 괜찮고.”
왜냐면 드디어 제 주변에 하는 사람이 생겼기 때문에. 속으로 들뜬 성우는 금세 다음 시간 책을 준비한다는 걸 잊어버리고 바로 성운의 자리로 걸어갔다. 성우가 온 걸 본 성운은 인사가 아닌 뭐냐는 듯 고갤 갸우뚱거렸다. 애써 들뜬 목소리를 감추고 제 평소 목소리로 물었다. 너 그 게임해? 간접적인 제 물음에 잠시 이해를 못했단 표정을 짓다가 이내 이해한 듯 아─, 그거? 하고 물었다.
이후 둘은 원래 성운과 대화하고 있던 친구들을 안중 밖으로 제쳐두고 제들끼리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점심 시간 끝종이 울리고 칼같이 시각 맞춰 들어온 윤리 때문에 책을 준비하지 못하고 그대로 성우는 혼이 나고 말았다. 그날 이후로 급격히 친해진 둘은 학교에서도 물론이고 하교도 같이 하게 되었다. 남들은 게임으로 친해져서 둘 중 한 명이라도 접으면 금방 절교할 것이라 생각하였지만 성운이 먼저 게임을 접은 후에도 둘은 여전히 같이 다녔다.
이제 정말로 성우가 성운에게 빠지게 된 날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햇살이 꽤나 뜨거워진 7월 중순이다. 축구 동아리라 할 것이라곤 축구 밖에 없는 동아리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실컷 축구를 하고 있었다. 그늘 밖으로 나가는 게 싫기도 하고 땀으로 샤워하는 것도 싫은 성운은 가만히 스탠드에 앉아 애들이 축구하는 걸 눈으로 쫓고 있었다. 얼굴은 물론이고 체육복까지 땀으로 흥건해진 아이들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그늘에 있어도 더워 죽겠구만 저렇게 뛰어 놀기까지나 하다니…….
이리저리 바쁘게 애들을 쫓고 있다가 우연히 성우가 눈에 밟혔다. 똑같이 땀으로 흥건해졌는데도 성우만은 유달리 섹시해보였다. 마치 남자 아이돌 팬들이 제 아이돌이 땀으로 흥건해진 걸 보고 섹시하다고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아,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한 거야. 양손으로 제 뺨을 약하게 두 번 친 성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반전이 끝나고 대충 찬물로 얼굴을 씻은 성우는, 스탠드에 가만히 앉아 구경을 하고 있을 성운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머리카락 한 올은커녕 성운의 모습이라곤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뭐야, 어디 간 거야? 두리번거리며 찾고 있다가 저 멀리서 걸어오는 성운의 모습에 한달음에 달려갔다.
“아, 벌써 끝났어?” “어, 아까. 근데 어딜 갔다온 거야?” “매점 좀. 너무 더워서.”
정말 매점에 갔다왔단 듯 제 손에 들린 이온음료 캔을 좌우로 흔들며 보여줬다. 마셔. 제 가슴에 안겨준 성운에게 오, 감사, 하고 말했다. 근데 나 콜라가 더 좋은데. 그 말에 성우를 매섭게 쏘아보며 그냥 처마셔, 사납게 말했다. 아니면 마시지 마. 성운이 뺏어가려 하자 성우가 웃으며 “장난이야, 인마.”라 말했다. 늘 체육 시간이나 동아리 시간이 끝날 때면 땀으로 흥건히 젖는 성우를 위해 성운은 운동장에서 조금 먼 매점에 가 음료를 사온다. 오직 성우에게만.
무언가 이상야릇했다. 저에게만 음료를 사 주는 것도. 아니, 뭐 친구니까 그러겠지. 그런데 저도 어딘가 이상해진 것 같다. 성운이 저에게 웃어줄 때면 왜인지 모르지만 제 마음이 동하게 되고 또 성운이 제 몸에 가까이 붙어올 때면 예전과 달리 제 몸이 경직되고 성운의 말로는 귀가 빨개진다나 뭐라나. 그래, 다 맞는 말이다. 살짝이라도 스치면 데일 것처럼 목덜미부터 뺨까지 후끈후끈해져 온다. 성우는 그 열기를 싫어했다. 열기에 취해 왠지 취중진담처럼 성운에게 솔직하게 다 말해버릴 것만 같아서.
또 B사의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항상 먹고 싶은 맛으로만 먹는데 요즘은 체리 주빌레로 먹는다는 것.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바로 성운이 체리 주빌레를 닮았다는 것이다. 봄에 태어난 성운은 봄을 닮은 체리 주빌레와 닮았다. 물론 저의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다마는. 그래서 성운은 체리 주빌레만 먹는 성우에게 묻는다. 그거 안 질리냐? 그리고 매번 성우는 안 질린다고 대답한다. 사실이긴 하지.
한번은 정말 작정하고 방에만 박혀서 생각을 했다. 황금같은 주말이니까 게임을 해야 하는데 자꾸만 성운이 생각나고 그런 제가 이해가 안 가서. 그리고 드디어 답을 내렸다. 저는 하성운을 좋아한다고. 봄을 닮은, 체리 주빌레를 닮은 하성운을 좋아한다고. 반한 이유는…… 성운의 예쁘게 웃는 미소? 저에게만 보여주는 수줍은 미소? 미소를 짓는 성운이 무척이나 예뻐서 반해버렸다. 그저 귀엽다고만 생각했다. 다른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마침내 그 생각들이 쌓이고 쌓여서는 일순 좋아하는 감정으로 변했다.
언제부턴가 옹성우가 좋아졌다. 성운의 마음을 대변할 수 있는 말이라곤 이 말밖에 없다. 언제부턴가 제 시선은 성우만을 쫓기 시작했고 언제부턴가 성우와 친하게 지내는 다른 사람을 질투하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제는 아이스크림까지도 질투한다. 성우가 즐겨 먹는 체리 주빌레, 저는 이제 그것까지 질투하고 만다. 사람도 아니고 어떻게 아이스크림에게까지 질투를 하는 거지? 이게 다 옹성우 때문인 거다. 이렇게 늘 제 자신을 이해 못하다가도 결국 끝은 남 탓이다.
밤 늦게까지 야자를 하고 하교를 할 때쯤이면 성우는 늦은 시간에도 문 여는 아이스크림 가게로 가 체리 주빌레만을 고른다. 이것이 바로 어느 날 갑자기 생긴 성우의 버릇이다. 질리지도 않은지 항상 그 맛만 먹고 성운도 어느 샌가 그 아이스크림을 질투하게 되었다. 성우의 입술이 닿는 아이스크림이 성운은 부러웠다. 매번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 생각해보면 정말 별 시덥잖은 생각이다. 그래놓고 또 질투한다.
성우를 매일같이 관찰한 끝에 얻은 정보는, 옹성우는 누구에게나 친절하다. 대상이 학생이든 선생이든. 또한 성별이 여자이든 남자이든. 그래서 성운은 성우를 좋아했고 특히나 그 친절함을 좋아했다. 하지만 친절한 탓에 늘상 성우는 여학생들에게 고백 받기 일쑤였고 성운은 그걸 탐탁지 않아 했다. 하지만 다행인 건 성우는 그 자리에서 바로 고백을 거절한다. 편지 봉투도 안 열어보고 선물도 안 받고. 그래서 성운은 그것이 궁금했다. 정말 예쁘다고 소문난 여자애들인데 어째서 고백을 받지 않는 걸까.
그래서 성운이 물어보았다. 왜 고백을 받지 않냐고. 성우는 정말 친절하게도 대답해주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서란다. 그 대답은 성운을 덜컥 겁나게 하였다. 고백이라도 하고 싶었다. 3학년이 되기 전까지는 고백이라도 해보고 차이려고 했다. 그런데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고백도 못해볼 게 뻔하잖아.
성운은 여기서 좋아하는 감정이 더 커져버리기 전에 성우를 멀찌감치 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우가 친절한 탓에 그러질 못했다. 성우는 성운을 끈질기게 쫓아다녔고 덕분에 성운은 성우를 피하지 못했다. 착한 성우는, 제가 무언가 잘못한 줄 알고 성운에게 잘못한 것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말하였다. 성운은 아무 것도 아니라며 거짓말을 쳤다.
성운은 이기적인 걸 싫어했다. 그토록 이기적인 걸 싫어하는 저인데 성우의 옆에 계속 있고 싶었다. 아니,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도 상관 없다. 저는 성우의 친구다. 친구가 옆에 있는 게 뭐가 나빠. 성우의 친절함은 한순간에 성운을 이기적인 사람으로 바꿔버렸다. 그 이후로 성운은 절대 성우를 피하려거나 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으니까 나중에 제가 고백했을 때 차겠지. 그거면 된 것이다. 성운은 제 마음이 식을 때까지 성우의 옆에 있고 싶다고, 있게 해달라고 믿지도 않는 하느님에게 매일같이 기도를 하였다.
그날 뒤로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한 성우와 성운은 꽤나 대담해졌다. 그러니까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에서도 손을 잡고 다니며 가끔은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입을 맞추기도 한다. 처음엔 걸릴 줄 알았지만 다행히도 걸리지 않았다. 처음 입을 맞추었을 때 걸릴까 봐 꽤나 조바심이 났다. 또 은근히 스릴감이 넘쳤다. 위험하지만 그게 또 성운과 성우는 좋았다. 그 상황에서 하는 입맞춤은 평상시 하던 입맞춤보다 더 아찔했다. 함께 달아오르는 열기에 성우는 이성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평소와 달리 오늘은 디저트로 아이스크림이 당겼다. 그래서 성우와 성운은 점심을 먹은 뒤 매점에 들어섰다. 아이스크림 냉동고 앞에서 뭐 먹을까 하고 고민을 하던 성우가 아이스크림들 사이에서 안쪽에 자리 잡은 체리 주빌레맛 아이스크림을 발견하곤 주저 없이 꺼내 들었다. 무슨 학교 매점에 체리 주빌레가 있냐. 아이스크림을 집어든 성우가 반대편에서 아이스크림을 고르던 성운에게 다가갔다.
“아직 안 골랐어?” “어. 뭐 먹을까….”
겨우 500원짜리에 아무리 비싸도 기껏해봐야 고작 1000원밖에 안 되는 값싼 아이스크림일 뿐인데 무얼 먹을지 신중하게 고민하는 성운이 제 눈에는 귀여워 보였다. 옆에서 같이 고민하는 척 몰래 성운을 사랑스럽단 듯이 쳐다보던 성우가 좀 전에 제가 집어들던 체리 주빌레가 생각나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다행히 딱 하나 남은 체리 주빌레를 누가 채갈세라 얼른 집어들어 성운에게 다가갔다. 이거 먹을래? 성우가 건네주자 성운이 잠시 망설이다가 받았다. 그래.
계산을 마친 성운은 얼른 껍질을 벗겼다. 역시 겨울에 먹는 아이스크림이 최고지. 한 입 베어물자 달달함이 입안에 금세 퍼져 나갔다. 아, 진짜 맛있다. 여태 제가 체리 주빌레를 질투했다는 게 거짓말이라는 듯 이제는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성운은 베어먹을 뿐만 아니라 핥아먹기도 했고 마치 아기가 공갈젖꼭지를 쪽쪽 빨듯 빨아먹기도 했다. 성우는 그 모습이 어떤 야동보다도 더 야해보이면서도 한편은 걱정되기도 했다. 저렇게 쉬지도 않고 먹으면 머리가 아파올 텐데.
“천천히 좀 먹어. 머리 아프겠다.” “어.”
듣는 건지 마는 건지. 제 말을 들은 체 만 체 그저 제 먹을 것만 먹던 성운의 턱에 아이스크림이 묻은 걸 발견한 성우는 성운 몰래 키득거렸다. 아니, 어떻게 먹으면 도대체 턱에 묻는 거야? 대놓고 웃다가 왜 웃냐며 짜증낼 게 뻔해 웃음을 참으며 성운을 불렀다.
“성운아.” “어?” “너 아이스크림 묻었어.” “어디?”
입가에 묻은 줄 알고 손으로 대충 닦아보지만 턱에 묻어 있는 게 닦이겠는가. 성우가 알려주지도 않은 채 실실 웃고 있으니 그게 못마땅스러운 성운이 “아, 어디!”라 소리쳤다. 그러자 성우는 그늘 속에 있는 나무 벤치로 성운을 이끌었다. 뭔데─. 성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무릎을 낮추어 그대로 성운의 턱에 제 입술을 포개었다. 여기 묻었어. 갑작스러운 성우의 행동에 깜짝 놀란 성운은 그리 세지도 않게 성우를 밀쳤다.
“야! 누가 보면 어쩌려고!” “뭐, 어때. 교실에서도 하는데.”
아, 그렇긴 한데……. 귀에서 피가 난다, 라는 말이 틀리지 않을 정도로 성운의 귀는 새빨개져 있었다. 교실에서는 항상 먼저 유혹해놓고선 제가 이렇게 먼저 다가가면 부끄러워하는 성운의 모순적인 모습 또한 성우는 좋아했다. 봄바람처럼 살랑살랑 다가와 제 마음을 마치 나무처럼 흔들어대던 성운은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