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봄의 파도.
Writtenby 우셔
“2월은 아직 춥네요.”
“섬이잖아요. 바람이 세죠.”
“그러네요.”
머리를 헝클이고 뺨을 간질이는, 시리지만 시린 대로 좋은 바람에 성운이 가만히 눈을 감았다. 앞바다의 거센 파도소리가 손에 감기는 듯 했다. 자갈 마당 한가운데 나무 의자를 두고 온 몸을 기대어 햇살과 바람을 만끽하는 성운은, 마치 한 마리의 고양이 같았다. 토스트 굽는 고양이. 한참을 힐끗대던 성우는 결국 대패질을 반복하던 손을 털어냈다. 지금은 일단 손을 멈추고 성운의 나른함에 동조되고 싶었다. 목장갑에 묻은 톱밥을 털고 코 밑을 쓸었다. 익숙한 나무냄새가 마음에 안정을 주었다. 성우는 작업다이에 걸터앉아 본격적으로 성운을 구경했다. 그늘이 없는 공방 앞뜰과 그 뒤로 보이는 낮은 돌담. 너머의 푸른 바다까지. 그 모든 풍경들 속에 성운이 어우러져 있었다. 햇살이 눈에 보였다. 작고 볼품없는 나무 의자에 한쪽 발을 올리고 앉은 성운의 이마가 반짝거렸다. 햇살은 그곳에 있었다. 고개를 젖히고 가볍게 콧노래를 부르는 미소 띤 얼굴 위에 머물렀다. 바닷바람에 날리는 가는 머리카락은 어느새 성우 안에서 또 다른 제주의 풍경이 되었다.
사진을 찍어보자고 할까. 날이 추워지면서 꺼내지 않은 카메라가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봤다. 일인용 딱딱한 나무 의자 하나면 충분하다 말하는 성운은 봄인듯 했다. 겨울 끝물에 남들보다 조금 빠르게 찾아온 봄. 제주의 봄.
2월, 봄의 파도.
w. 우셔
사장님. 움직임 없는 장면을 언제까지고 볼 수 있을 것 같았던 성우는 갑작스런 부름에 정신을 차렸다. 딱히 잘못한 게 없음에도 반사적으로 일어나 마당을 살폈다. 성운의 눈은 아직 감겨 있었다. 두 사람의 거리를 채우기 위해 목소리가 커졌다.
“네?”
“제주는 참 좋은 것 같아요.”
꿈을 꾸는 표정을 앞에 두고 씁쓸한 웃음이 걸렸다. 객이 아닌 성우로서는 수없이 들은 말이었다. 스쳐간 이들 대부분이 쉬이 성우를 부러워했다. 그럴 때마다 성우는 굳이 팩트를 체크하려들지 않았다. 타지에 대한 낭만은 딱 그만큼 가벼운 거라고. 꼬집어주지 않아도 사실은 모두들 알고 있으니까. 대신, 부러워할 꺼리를 찾아 이곳까지 내려와 한탄을 쏟아내는 어른들의 어리광을 적당히 받아주었다.
“막상 살아보시면 여기도 별반 다를 거 없는데. 그래도 뭐, 서울에 비하면 저도 여기가 더 낫다고 봐요.”
성우가 한걸음을 내딛어 햇빛으로 나왔다. 자갈 밟는 소리에 성운의 눈이 떠졌다. 성우는 두 세 걸음 더 걸어 나왔다. 성운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역시. 막상 살고계신 입장에선 다르겠죠? 그래도….”
“그래도?”
“바람이 세니까 그걸 버텨내는 내가 강해진 기분이 들어요. 괜히 그런 기분이야. 섬이,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 거 같아요.”
섬이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 성우는 팔짱을 끼고 성운의 얼굴을 응시했다. 헷- 소리가 날 것 같은 웃음 사이에서 연약해진 상처를 본 기분이었다. 민망하니까 그만 쳐다봐요- 웃고 있는 성운의 눈이 그렇게 말했다. 성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먼 바다로 시선을 돌려주었다. 이곳에서 상처를 아는 척하는 건 실례다. 누구나 간신히 틀어막은 패인 구멍 한두 곳이 있었다. 그건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기 때문에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왜 그렇게 됐는지 굳이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내버려두면 자연히 봉합되기도 하고, 속을 보이며 벌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흉을 남긴 채 아물기도 한다. 어쨌든, 어떤 식으로든 변해간다. 성운도 지금 그 과정 안에 있는 게 분명했다. 성우 자신이 여러 모습을 걸쳐 지금에 이른 것처럼.
성운의 고개가 성우를 따라 돌아갔다. 바닷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메웠다.
옹성우. 그는 일명 증권맨이었다. 연차가 오를수록 일과 개인의 삶이 분리가 되지 않았지만, 괜찮았다. 일에 대한 성우의 만족도가 높았고 따라오는 수입도 좋았다.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곁을 지키는 애인도 있었다. 그렇게 옹성우가 없는 옹성우의 삶을 몇 년간 살았다. 그러다보니 여유 없는 삶 자체가 익숙해졌다. 그렇게 사는 게 정상이라 생각했다. 고급스럽게 디자인한 명함 속 이름이 전부인 삶을 살았다. 성우 스스로도 그런 삶에 취해있었다. 적당히 자기 잘난 맛을 즐겼다. 나는 바쁘고, 돈을 많이 벌고,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뛰어난 사람들과 만나고. 그러니 이런 불편-내가 없는 삶- 쯤은 감수해야지.
그러던 어느 날, 스팸으로 분리된 메일 한 통을 받았다. 내용은 간단했다. 곧 성우를 허수아비로 세운 공사가 진행될 예정이며 윗선에선 이미 얘기가 끝났다는 것. 감당 못할 거 같으면 지금 빠져나가라는 경고성 내부고발이었다. 몇 개의 서류철 앞면을 폰으로 찍은 사진이 첨부되었다. 머리를 쇠몽둥이로 맞은 기분이었다. 해당 서류들 중엔 성우가 일조한 것들도 있었다. 퍼즐의 조합이 최종적으로 무엇을 향하는지 성우 본인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자신은, 회사로부터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성우는 의미 없이 마우스의 커서를 움직였다. 안경이 미끄러져 코끝에 걸쳐질 때까지. 멍하니 화면만 보고 또 봤다. 바뀐 건 없었다. 회전 빠른 머리는 벌써 수십 번도 넘게 같은 결론을 내렸다.
아. 옹성우 팽당했구나.
‘…씨발, 좆같네.’
‘부정’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사건이었다. 도대체 뭘 위해서 살았던 거지? 일이 곧 삶이었던 생활에서 배신을 당하니 사방 어디에도 몸을 기댈 자리가 없었다. 성우는 마음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든 과정을 생생하게 느꼈다. 발밑의 기초가 마른 모래처럼 무너졌다. 그제야 알았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선 뭐가 필요한지. 최후까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하는 게 무엇인지. 성우는 그걸 찾기 위해 모든 걸 정리하고 제주로 내려왔다. 물론 이 결론엔 많은 것이 생략되어있다. 윗선을 찾아가 거래를 하고 회사를 정리한, 빠르고 이성적인 수습이라던가, 백수가 돼서 만난 여친이 달라진 성우의 타이틀을 견디지 못해 이별했다던가, 서울에서의 매일과 거미줄처럼 얽힌 관계 등 모든 것에 환멸이 났다던가, 그래서 가장 먼 제주로 도망쳤다던가 하는 이야기가 빠져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옹성우가 더 이상 좆같아지지 않기로 다짐했다는 점이다.
생계를 위해 게스트 하우스를 열었다. 그리고 목공일을 배웠다. 자리를 잡고 공방을 열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 시간동안 나무는 성우에게 위안이 되어 주었다. 나무 뿐 아니라 바람과 바다도 늘 성우의 곁에 있었다. 사무치게 외로웠지만 견딜 수 있었다. 회복은 느리지만 차근히 진행되었다. 나무에게 받은 위로는 차츰 게스트 하우스를 찾은 인연들에게까지 확장됐고 그렇게 지내다보니 어느새 제주의 풍경 안에 성우가, 성우의 일상 안에 제주가 녹아들었다. 성우는 이곳에서 잃어버린 옹성우를 착실히 발견하고 세워갔다.
“나무는 좋아요. 말을 안 하니까. 그 묵직한 무게가 절 안정시키거든요. 톱밥 날릴 때만 좀 주의하고. 가만히 냄새 맡고 있으면 그것도 너무 좋고요.”
김이 모락나는 갈치조림이 식탁 위로 올라왔다. 성운은 해맑게 박수를 쳤다. 성우의 식탁에 마주 앉아 밥을 먹은 지도 벌써 닷새가 되어간다. 성운은 살이 통통하게 오른 갈치의 배를 젓가락으로 가르는 것에 집중하며 입을 열었다.
“저는… 여기 파도가 너무 좋더라고요.”
“파도요?”
“네. 파도. 그냥 끝없이 반복되는 소리가 너무 좋아요.”
파도. 금방이라도 귓가를 때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해 성우는 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디를 봐도 바다가 보였다. 철썩이고, 밀려오며, 파랗고, 하얀 거품이 나는. ‘파도’ 라는 단어로 성우가 떠올릴 수 있는 정의는 그런 피상적인 것들뿐이었다. 너무 익숙해진 탓일 테다. 성우는 갈치조림을 올린 흰쌀밥을 가득 떠 입에 넣는 성운을 바라봤다. 문득, 성운이 저 안에서 발견한 것은 무엇일지 궁금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장님 요리 진짜 잘하셔. 차라리 식당하세요. 대박 날 거 같은데. 옹식당 이런 거.”
“혼자 살아보세요. 다 하게 돼요.”
몇 년을 혼자 살았지만 매 끼니가 인스턴트였던 성운으로서는 영 와 닿지 않는 말이었다. 잘생긴 사람은 원래 뭐든 잘하나봐. 다 들리도록 꿍얼거리는 성운은 확실히 귀여웠다. 삼십대의 성인남자가 또래의 성인남자를 두고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여튼 그랬다. 칭찬 아닌 칭찬에 내심 기분이 좋아진 성우가 감사의 표시로 생선살을 크게 발라 올려주었다.
“그러고 보면 성운씬 진짜 바다 좋아하는 거 같아요. 눈만 뜨면 나가잖아요.”
“바다 보려고 비행기까지 타고 왔는데. 당연히 질리도록 봐야죠.”
“그래도 성운씨처럼 하루 종일 바다만 보는 사람은 없어요. 우도 안 궁금해요?”
“에이. 관광코스는 이미 옛날에 뗐죠. 이번엔 오로지 바다가 목표예요.”
성운의 비하인드를 알고 있는 성우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쉽게 알 것 같다 말할 순 없지만 충분히 이해되는 마음이었다. 그래도 바다는….
“전 그냥 썰렁하고 춥던데.”
“사장님 되게 딱딱하시다. 낭만이 없어. 안되겠다. 우리 밤에 산책 나가요. 제가 좋은 스팟 알아놨어요.”
“여기서 4년을 산 저에게 일주일 전에 온 성운씨가 좋은 장소 추천하는 거예요?”
마주본 두 사람이 웃음이 터트렸다. 성운이 온 뒤로 확실히 웃음이 늘었다. 철마다 여행객들로 북적거리는 게스트 하우스와 달리, 바로 옆에 위치한 주인댁은 늘 조용했다. 그 조용함을 사랑하는 성우였는데. 유별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성운이 이곳에 있는 풍경이 자연스러워졌다.
일주일. 성운이 서울에서 내려온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성운은 아직 상처를 감내하는 중이다. 결혼이 파토 나고 삼일 뒤, 그러니까 예정되어있던 본인의 결혼식 날 성운은 최소한의 짐만 챙겨 비행기를 탔다. 돈이야 넘쳐났다. 예식장, 스드메, 호텔, 일주일 뒤에 잡혀있던 신혼여행 일정까지. 임박해서 취소하다보니 어디서든 대부분의 금액을 환불수수료로 물어야했지만 쏟아 부은 돈이 커서 그런지 돌아오는 돈도 나름 상당했다. 통장의 내역을 확인하던 성운은 미친놈처럼 웃었다. 인생에서 가장 큰 실패였고 가장 히트한 코미디였다. 예식 삼일 전에 파혼이라니. 그런 일이 과연 실재할까 했는데 자신에게 일어났다. 쪽팔렸다. 너무 쪽팔렸다. 당장 한강물에 뛰어들고 싶을 만큼 쪽팔렸다. 청첩은 다 돌렸고 축하도 받을 만큼 받았다. 가족, 친척, 친구, 직장 동료, 동창, 부모님 지인분들. 생각하는 모든 게 스트레스였고 칼날이었다. 그렇다고 진짜 죽을 순 없었다. 그런데 이대로 내버려두면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원래라면 새벽부터 바빴을 아침, 무작정 공항으로 달렸다. 삼일 내내 꺼두었던 핸드폰과 환불금액이 들어온 카드를 챙겨들고. 항공권을 미리 예매한 것도 아니었다. 어디를 가겠다는 목적도 없이 달려온 성운은 그제야 공항에서 갈 길을 잃고 멈춰 섰다. 수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지나가는 사이에서 미아처럼 서성였다. 속이 빈 캐리어가 버팀목이라도 된다는 듯 붙들고 있다 결국 주저앉아버렸다. 자신은 진짜로 길을 잃은 것이다. 그 사실이 못내 비참해 성운은 캐리어를 끌어안고 울었다.
부시럭 소리를 내며 캐리어 위에 올라온 건 감귤초콜릿이었다. 아직도 눈물을 쏟아내며 고개를 든 곳엔 뚱한 표정의 어린아이가 서있었다. 비슷한 눈높이의 아이는 초콜릿을 향해 고갯짓을 했다. 어린 아이 눈에도 어지간히 한심해 보이나보다, 그렇게 생각한 성운이 서둘러 축축한 얼굴을 닦아냈다. 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여성이 바쁘게 통화중인 게 아닌 중 다행이었다. 동정은 이 아이로 충분했다.
제주 감귤 초콜릿 - 크런치. 성운은 가만히 포장지를 들여다보다 비닐을 까고 한 입에 넣었다. 바사삭거리며 부서지고 흩어졌다. 눈을 감았다. 초콜릿이 코팅된 낱알을 씹으며 성운은 제주를 떠올렸다. 수학여행으로 가고, 입대 전 친구들과 가고, 애인과도 가보고, 직장인이 되어서 부모님 모시고도 가고. 이래저래 꽤 가본 제주였음에도 어쩐 일인지 오로지 바다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시리게 푸른 빛깔도 생각나고 주상절리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지던 거친 파도도 생각났다. 그 처절함을 다시 보고 싶었다. 거기라면 이 응어리를 던지고 올 수 있을 거 같았다.
‘제주도요. 가장 빠른 걸로 주세요.’
성운은 곧바로 제주행 티켓을 끊었다. 티케팅을 하고 대기를 하는 동안 폰을 켰다. 수없이 밀려들어오는 부재중 연락들을 무시하고 숙소를 알아봤다. 그때 발견한 곳이 바로 성우의 게스트 하우스였다.
<푸른밤>
한적한 곳에 위치해있었고 객실도 편안해보였다. 무엇보다 앞은 바다, 옆은 주인이 운영하는 공방이 있다는 점이 좋았다. 잘은 몰라도 그냥 따듯한 느낌이 들었다. 고민할 것도 없었다. 성운은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꽤 길게 신호가 울린 후에야 부드러운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 네.
‘푸른밤이죠?’
- 네, 맞습니다. 예약하시게요?
‘오늘 들어가고 싶은데 혹시 방 있나요.’
- 아. 오늘이요?
제주이다 보니 당일손님이 흔치 않은지 당황한 목소리와 함께 1, 2초의 정적이 흘렀다. 웃긴 일이지만, 성운은 그 순간 진심으로 초조해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숙소임에도 반드시 그곳에 가야한다는 마음이 일었다. 본인이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맹목적인 집착이었다.
- 네, 괜찮습니다. 준비해두겠습니다.
남자의, 그러니까 호스트의 수락이 떨어지자 성운은 의자 위로 온 몸을 늘어뜨렸다. 고개를 젖혀 열이 오른 눈을 가렸다. 아-. 성운의 깊은 안도가 수화기 너머로 전달됐는지 남자는 잠시 성운의 호흡을 기다려주는 듯 했다.
- 음. 원래는 예약을 받아야 하는데. 그냥 오셔도 좋아요. 2월이라 아직 손님이 없어서 널널하거든요.
‘감사합니다.’
- 편하게 오세요.
입금도 받지 않고, 하물며 이름도 수집하지 않았다. 편하게 오세요. 빈 말이 아닌 듯 했다. 그 말이 성운의 귀에는 꼭, ‘당신이 말없이 나타나지 않아도 그걸 따져 묻지 않겠다’는 뜻처럼 들렸다. 그러니 편히 오라고…. 얼굴도 모르는 이가 건넨 말은 성운에게 위로가 되어 날아왔다. 마치 주문 같았다. 성운은 정말로 조금 편안한 마음이 되어 비행기에 올랐다.
타닥- 마른 장작이 타들어 갔다. 점퍼에 폭 파묻힌 성운과 성우는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았다. 밤바다의 파도소리가 두 사람을 맴돌았다. 찬바람을 버티던 성운이 결국 지퍼를 코끝까지 올렸다. 작은 코는 벌써 끝이 붉어져있었다. 가만히 하는 냥을 보던 성우가 웃음을 흘리고 자갈바닥에 쓰러지지 않게 맥주병을 내려놓았다. 저녁이면 날이 추워 맥주병을 오래 들고 있기 힘들다. 차가워진 손을 비비고 불을 향해 내밀었다. 그럼에도 이 시간을 포기하지 못하는 건 순전 성운 때문이다.
‘사장님. 나랑 저녁에 저기서 맥주 한 병 할래요?’
‘저기요? 밤에는 바람 때문에 추울 텐데.’
‘괜찮아요. 사실은 바다에서 마시고 싶은데 취하면 좀 위험할 것 같고. 여기에서 마시면 사장님도 있으니까….’
성운이 가리킨 곳은 공방 뜰의 구석이었다. 성운의 시선은 한참을 그곳에 머물렀다. 그러다 성우에게 멋쩍게 웃어주었지만, 결국은 바다로 향했다. 성우는 하얀 옆얼굴에서 그가 삼켜낸 말들을 쉬이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어쭙잖은 위로를 건네는 대신, 잘라놓은 폐드럼통을 창고에서 꺼내왔다.
그날 밤, 멍석이 깔렸다. 손님은 별 것 아닌 이야기를 하듯 자신의 사연을 풀어냈다. 구질구질하죠? 웃으며 묻기에 성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저도 구질구질한 얘기를 하나 알고 있어요. 누가 더 불행한가, 불행내기를 한 것은 아니었다. 당신의 상처를 이해한다고 섣불리 말할 수도 없었다. 이해한다 말한다면 그건 분명 교만이다. 타인인 성우에게 허락된 이해는 오직 하나였다. 이 손님은 지금 자신을 모르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쏟아내고 싶어 한다는 거. 자신이 그랬으니까. 그래서 이 먼 제주까지 온 거니까. 아무도 옹성우를 모르는 제주에서 미친 듯이 나무를 자르고, 문지르고, 두드리고, 덧칠하면서 마음을 쏟아냈으니까.
복잡한 생각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성우로서도 실로 오랜만에 풀어 보는 이야기였다. 어라? 내가 이렇게까지 담담했었나?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었다. 그제야 묵묵히 보낸 지난 시간들이 유의미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고개를 들자 성운이 울고 있었다. 소리도 내지 못하면서 온 힘을 다해 울고 있었다. 성우는 가만히 블루투스 스피커의 음량을 키웠다. 성운의 소리도 차츰 커졌다. 성우는 제가 다 눈물이 날 것 같아 눈을 깜박이며 바다를 바라봤다. 검은 바다는 아무것도 담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 위로가 됐다.
그게 성운이 온 지 이틀째 되던 날이었으니 지금은 저녁식사 후 으레 겉옷을 챙겨 입는 두 사람이 되었다.
“사장님. 솔직히 나 귀찮죠.”
“성운씨요? 아닌데. 그래 보여요?”
“아니요. 안 그래 보여요. 그래서 물어본 거예요. 나 같으면 나 엄청 귀찮을 거 같은데 사장님은 항상 아무렇지 않게 나랑 놀아주시니까.”
“놀아줘도 뭐라고 하는 거예요?”
아니아니. 성운은 손을 저으며 얼굴을 구기고 웃었다. 나도 나름 바빠요. 새침하게 말하며 맥주병을 들어 건네자 성운이 소리가 나게 병을 부딪혀왔다. 두 사람은 마주보고 웃으며 차가운 맥주를 넘겼다.
“와. 별 많다.”
날이 깨끗해서 별들이 제법 보였다. 성우는 성운을 따라 고개를 젖히고 긴 다리를 꼬아 뻗었다. 성운의 물음을 곰곰이 곱씹어보았다. 생각해보면 일반적이지 않은 거리감이 맞았다. 수화기 너머 불안에 쫓기던 목소리가 하얀 낯으로 인사를 하던 그때부터. 성운의 사연을 듣기 전부터, 듣고 난 후에도. 성우는 꾸준히 이 손님이 신경 쓰였다. 불편한 신경이 아니라 자꾸 시선이 가고 들여다봐야할 거 같은 신경쓰임이었다. 그래서 말벗을 자처했다. 넉살이 뛰어나게 좋은 편도, 그렇다고 무뚝뚝한 편도 아닌 성우였지만 성운에게는 갖은 오지랖을 다 부렸다. 같이 식사하실래요? 공방 구경하실래요? 장 보러 가야하는데, 성운씨 시간 되세요? 넌지시 건네면 성운은 눈에 띄게 밝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게스트 하우스보다 성우의 집이나 공방에 함께 있을 때가 더 많아졌다. 처음 삼일은 닷새가 되고 닷새는 일주일이 됐다. 어느 순간부터 성우마저도 자신의 공간에 성운이 함께 있는 걸 자연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성우는 아직도 하늘을 보고 있는 성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당신은 객인데. 절제 없이 너무 많은 걸 열어버린 걸까. 당신이 돌아가면 나에게 무엇이 남는다고…. 당신은 객인데.
성우의 마음이 들릴 리 없음에도 성운은 천천히 시선을 마주쳐왔다. 기운 고개 때문에 마치 바닷가에 나란히 누운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성우는 어느 날 찾아온 위태한 손님이 자신의 일상마저 변화시켰다는 걸 깨달았다. 그를 도우려했던 모든 행동들이 결과적으로 그를 향해 온 빗장을 열어젖힌 꼴이 되었다. 누가 누구의 영향을 받고 있었던 건지.
“…….”
“…….”
두 사람은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각자의 생각 안에 머물렀다. 각기 다른 생각이었지만 그 안엔 분명 성우가 있고 성운이 있다. 쓰여진 활자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읽을 순 없어도 사실만은 분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할 필요가 없었다. 성우는 성운을 둘러싼 밤 풍경을 차근차근 눈에 담았다. 까만 머리카락이 까만 밤바다의 바람에 날려 까만 밤하늘을 유영했다. 이건 이것대로 영원히 전시하고픈 또 다른 프레임이었다. 그럼에도 한 번을 못 찍었으니, 매번 타이밍을 놓치는 카메라가 애석할 따름이다.
그때, 성운이 엉덩이를 털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희고 작은 손바닥이 성우를 향했다.
“우리 파도 보러 가요.”
성우의 입이 벌어지며 그 사이로 감탄이 흘러나왔다. 콩테로 그린 듯한 검은 파도가 넘실대는 거대한 바다는 고요했다. 철썩거리는 소리가 공방과 게스트 하우스의 마당에서도 들릴 정도로 요란한데, 이상하게 고요했다. 귀로 들리는 소리 이전에 파도가 삼켜내는 감정들이 한없이 깊은 침묵 안으로 묵직하게 가라앉고 있었다. 성우는 이 성난 차분함이 마음에 들었다. 제주에 살면서도 파도에게서는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멋지죠? 아침 뷰도 멋지고 점심 뷰도 멋지고 저녁 뷰도 멋져요. 사장님 알고 계셨어요?”
“아니요. 자주 왔지만 이런 느낌은 처음이네요.”
많이 차가울까요? 바다를 항해 한 걸음 내딛는 성운의 팔을 성우가 급하게 붙잡았다. 차요. 얼음장 같을 거야. 감기 걸려요. 입술을 쭉 내밀면서도 성운은 다시 성우의 옆자리로 돌아왔다.
파도가 그들의 세네 걸음 앞까지 밀려왔다 멀어지고 다시 밀려오기를 반복했다. 불규칙한 호선 안에 묘한 안정감이 있었다.
“바다에 나올 때마다 이 자리에 서서 하나씩 던졌어요.”
성우의 손은 아직 성운의 팔을 붙들고 있었다.
“처음엔 그냥 내가 확 들어가고 싶었거든요? 그렇잖아요. 쪽팔려서 어떻게 살아. 그런데 사장님 이 손.”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성운을 붙들 성우의 손에 닿았다.
“이 손처럼 사장님이 나를 꽉 붙잡아주고 있는 거예요.”
“내가요?”
“응. 내가 길거리에 나뒹구는 쓰레기처럼 느껴질 때마다 사장님이 나타나서 뭐하고 있냐고 물어보고, 공방에 데려다주고, 따듯한 밥 차려주고. 그래서 바다에 뛰어들고 싶을 때마다 사장님 따라다녔어요. 그랬더니 점차 살겠더라고요.”
공방 뜰에서 햇볕을 쬐며 미소 짓던 성운이 떠올랐다. 진실 된 미소였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성우의 마음에도 안도가 번져갔다. 커다란 손이 붙잡고 있던 걸 놓고 성운의 어깨를 둘러 감쌌다. 이정도의 위로는 허락되는 밤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울고 싶어지면 여기에 왔어요. 한 시간 내내 파도소리만 들어본 적 있으세요? 저기 뒤에 바위 있죠. 저기에 등 기대고 앉아서 파도소리 배경 삼아서 하나씩 말로 풀어내는 거예요. 내내 가지고 있던 의구심부터 아무에게도 안했던 걔에 대한 쌍욕이라던가. 암튼 쌓인 모든 걸 다 주절주절 거려요. 그러면 파도가 호미질 하듯 그걸 가져가서 저 끝을 알 수 없는 바다 속으로 밀어 넣는 거죠. 그렇게 하나씩 수장시켰어요.”
“잘했네요.”
“잘했죠?”
“네. 잘했어요.”
핑-퐁. 성우의 칭찬에 성운의 웃음이 터졌다. 고개를 숙이고 온 몸을 흔들며 웃었다. 어깨를 붙들고 있던 성우의 몸도 함께 흔들렸다.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여행 중 예기치 않은 만남. 비포선셋 같은 그런 거요.”
성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해당 영화를 본 적은 없지만 여행지에서 사랑에 빠진 남녀의 이야기라는 건 안다. 성우를 올려다보는 성운의 눈빛이 따듯했다.
“근데 이런 것도 좋네요. 썸 같은 거 말고, 그냥 성우씨 같은 좋은 인연이랑 만나는 거요.”
성우씨. 놀라운 호칭이었다. 지금까지 성운은 성우를 사장님이라 불렀다. 성운 뿐 아니라 대부분의 손님들이 그랬고, 성우였어도 그렇게 불렀을 것이다. 손님들이 받아가는 명함이야 어느 주머니에 들어가서 언제쯤 버려지는지 알 길이 없었고 그들 중 몇이나 성우의 이름을 알런지도 모를 일이었다. 성우 입장에서도 사장님이라는 호칭과 그만큼의 거리감이 좋았다.
성우씨.
성우는 천천히 입가를 문질렀다. 묘한 감각들이 몸 이곳저곳에서 토독- 깨어나는 기분이다. 이름으로 불린 게 언제더라. 푸른밤 사장님, 옹사장 말고 이곳에서 누가 나를 옹성우라 불러주었던가. 성우는 지난 시간들과 이별하고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 이곳이 타지였고 그가 혼자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성우는 달라졌고 강해졌다. 의미 있는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니 달라진 옹성우를 불러줄 사람이 없다. 혼자니까. 왔다 돌아가는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성우는 혼자였다.
성우의 눈빛이 복잡하게 변해 나란히 선 성운을 향했다. 그가 말한 좋은 인연이 성우로 하여금 자꾸 낯선 감각을 일깨운다. 씁쓸한 깨달음 가운데 성우가 허망하게 웃었다.
“성운씨. 성운씨가 지금 나를 무지막지하게 흔들고 있는 거 알아요?”
“네?”
“한 번도 그런 적 없는데…. 성운씨 때문에 갑자기 외로워졌어요. 이 바다가.”
“하하. 그럼 어떡해요. 저 서울로 돌아가면 안 되겠네요.”
“…그러게요.”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안다. 성운에게는 서울의 삶이 있다. 성운이 제주에서 얻을 수 있는 몫을 다 얻었다는 건 그가 무너진 서울의 삶을 세우러 가야할 때가 되었음을 의미했다. 잘했다 칭찬해줬는데 이상하게 가슴에 바람이 들었다. 바다는 원래 때마다 얼굴을 바꾸니까. 성우는 애써 스스로 납득하며 성운의 어깨를 꾹 쥐었다 놓았다.
열린 문을 두고도 성운은 한 걸음을 떼다 돌아서고 다시 떼다 돌아섰다. 뒤에 서있던 성우가 팔짱을 끼고 지켜보다 고개를 저었다. 아쉬운 마음을 왜 모를까. 마음을 비교할 순 없어도 제 마음은 분명히 아는 성우였다. 떠나는 이가 성운이라 차라리 다행인 부분이기도 했다. 잠깐 이마를 긁은 성우가 성운의 앞에 섰다. 커다란 손을 내밀었다. 마지막 인사였다.
“언제든 오세요, 여기. 쉴 수 있는 곳으로 지켜둘게요. 성운씨를 위해.”
주문이었다. 성운을 불러들인 주문처럼 이번에는 성운의 걸음에 힘을 실어줄 주문. 두려움을 날려주고 어깨를 밀어주는 주문. 그제야 성운이 웃었다. 캐리어를 놓고 성우를 향해 똑바로 섰다. 하얗고 작은 손과 커다란 손이 틈 없이 포개졌다. 안녕.
제주의 하늘에 비행기가 뜰 때마다 성우는 외로움을 앓게 되었다. 나무를 짜다가도, 게스트 하우스의 방을 청소하다가도, 먼 하늘에서 반짝이는 빛을 발견하면 창가에 한참을 머물렀다. 그러다 깨달았다. 아. 결국은 사진 한 장을 안 찍었구나. 깨닫자 밀려오는 외로움의 무게는 적정수위를 넘겼다. 여행의 열병을 왜 자신이 앓고 있는지…. 그래도 성운을 궁금해 하진 않았다. 파도처럼 밀려왔다 사라진 사람은 그저 젖은 모래처럼 흔적으로만 남기면 되는 것이다. 그게 옳은 일이라 생각했다. 외로움과 함께 곱씹다 색이 바라도록 우려낸다면 그걸로 족했다. 물론 공방에서 작업을 하다가도 볕이 좋은 날이면 마당 한 가운데 의자 하나를 꺼내 하릴 없이 앉아있기는 했다. 밤이면 바닷가를 걷다 모래가 파일 때까지 한 곳에 서있다 돌아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여기서 무언가를 더할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종종 참을 수 없는 것이 올라올 때면 성운이 일러준 곳에 앉아 그를 따라 파도에 마음을 쏟아냈다.
그렇게 성우는 전과 같지만 다른 제주의 삶을 살았다. 유채가 지고 수온이 오르고 사람들이 몰려올 때까지. 그리고 가을이 지나 다시 겨울이 올 때까지. 그 사이 열병은 또 다른 일상이 되어 조금 유해져갔다.
그리고 다시 2월이 됐다.
방한용 비닐을 덮은 공방의 불투명한 창으로 누군가의 실루엣이 보였다. 아무렇지 않게 공방 대문을 연 사람은 자갈을 밟으며 점차 가까워졌다. 성우는 슬라이드를 멈추고 헤드폰을 벗었다. 열어줄 새도 없이 문은 밖에서 먼저 열렸다.
“누구세….”
성운이었다. 캐리어를 끌고 웃고 있는 사람은 성운이었다.
“…세상에.”
꼬박 일 년 만에 다시 성우를 찾아왔다. 그때와는 다르게 조급해보이지도, 불안해보이지도 않았다. 단정하고 따듯하게 차려입은 성운의 얼굴도 그와 비슷했다. 안정되고 편안해보였다.
“여기가 계속 생각났어요. 그리고, 성우씨도.”
웃고 있는 성운의 뒤로 제주의 바다가 보인다. 성운, 낮은 담장, 푸른 바다. 사진 한 장 찍어내지 못해 기억으로만 더듬었던 바로 그 장면이 지금 성우의 앞에 실재하고 있다. 이른 봄과 함께 열병의 종식이 선언되었다. 성우는 낡은 목장갑을 빼 아무렇게나 던졌다. 그리고 성운을 향해 걸어갔다. 조금은 빠른 걸음으로.
2월의 제주. 파도치는 바다의 풍경 속에서 깨달았다.
파도는 끊임없이 돌아오며 머무는 존재임을.
-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