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Written by Yiss
사랑해서 헤어진다는 말, 성운 역시 과거에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었다. 그 말인 즉, 지금 들어서는 그 말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했다. 정말 너무 사랑해서,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놓을 수 있었다. 놓아야지만 더 넓은 세계로 날아가는 너를 위한 선택인 것을 성우 네가 이해해주기만을 바랐다.
-우리 그만하자.
-..... 형 뭐가 또 불만이야? 내가 스케줄이 너무 많아서 형이랑 놀 시간이 없어서 그래? 내가 스케줄을 좀 줄일게.
-아니, 그런 게 아니야.
-대체 뭐 때문에 그래 성운아.
-내가 힘들어서 그래. 네 곁에 내가 너무 볼품없어 보여 점점.
-.....
-날 위한 것도 있지만, 널 위한거야.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아니, 해야만 했었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성우는 그렇게 10년을 같이 한 성운을 보내주었다. 나를 위해서 헤어진다는 개 같은 소리는 끝에 하지 말았어야 했다 하성운은. 나를 위한 거라면 떠나면 안 됐었다. 10년을 곁에 머물던 이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땅으로 꺼졌는지 하늘로 솟았는지 성운이 있어야 할 곳 그 어디에도 성운은 없었다. 어디론가로 완벽하게 숨어버렸다. 헤어지는 그 날 너 스스로가 내게 볼품없어 보인다고 한 말에 머리를 망치에 맞은 듯 했다. 내 어떤 모습이 널 그렇게 만들었을까. 수없이 자문하고 대답을 생각해도 답이 나올 리가 없었다. 나도 모르는 내 모습 중 어떤 게 널 지치게 했니. 다시 붙잡는다면 붙잡힐 생각은 있는 거니. 한여름의 장마는 지독했고, 하성운과의 이별에 제 눈에도 비가 내렸다.
-성우야, 이번 휴식기에 아무 스케줄도 안 잡을 테니까 좀 쉬어.
-.....
-그리고 좀 먹고 임마.
-....형, 하성운 어디 갔을까?
-그렇게 찾고 싶으면 알아봐줘?
아니, 내가 다시 찾아가면 성운이는 더 멀리 도망갈 것 같아. 완전히 찾을 수 없는 그런 곳으로 꼭꼭 숨어버릴 것만 같아. 목구멍에서 꽉 막혀버린 대답은 입 밖으로 터지지도 못 하고 멍하니 고개만 저었다. 화가 나, 성운아 널 찾고 싶은데 널 찾으면 내 옆에서 네 자신이 스스로 볼품없이 느껴진다는 네가 떠올라. 그러면 난 널 찾아도 다시 내 손으로 보내주겠지. 너무 바보 같은 나라서 그래서 화가 나. 그래서 계속 눈물이 나나봐. 매니저형 나 노래하는 거 그만둘까? 성우의 질문에 매니저는 미쳤냐며 펄쩍 뛰었다. 지금 네가 이뤄놓은 것을 보라며 벽장 한 가득 놓인 트로피와 각종 상패들을 줄줄이 나열했다. 그게 다 의미가 있는 거 맞아? 저 상들이, 저 트로피의 기쁨을 함께할 이가 이제 내게 없는데 저게 다 무슨 소용이야? 2년의 연습생 생활과 8년의 가수 생활. 그리고 그 기간을 내 옆에서 지켜봐 준 단 한 사람. 그 사람이 없잖아.
-여름이 끝나 가는데 날이 맑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형.
성우는 성운과의 이별 후에 언제 끝날지 모를 장마가 계속되었다. 스케줄이 없는 쉬는 기간 동안 성우는 제 집에 남아있는 성운의 흔적을 쫓았다. 남은 물건이라 해봤자 성운이 제게 그려주었던 제 노래하는 얼굴이 그려진 수많은 캔버스가 전부였다. 성운이 쓰던 칫솔, 커플 잠옷이라며 제가 선물했던 빨간색 체크무늬 잠옷마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언제부터 이것들이 부재했던 것일까. 제가 성운에게 못 해준 것만 생각났다. 잘 해준 기억은 하나 없고, 못 해준 기억만 수두룩했다. 스케줄로 인해 못 챙긴 수많은 순간들, 어느 순간부터 성운이 혼자 챙겼던 기념일들. 앨범 활동이 끝나면 발리로 여행가자는 약속은 벌써 3번 째 기약 없이 연기되고 있었다. 그런 순간들이 쌓여서 성운을 지치게 했나보다. 왜 더 빨리 알지 못 했을까 자신을 원망만 했다.
-이거 형 주려고 만든 곡인데, 형이 가사 한 번 써볼래요?
-...대휘야.
-....성운이 형한테 제일 먼저 들려줬었어요. 성운이 형이 이 곡 형이 부르면 좋겠다고 했었는데 뒤를 완성 못해서 계속 미뤄뒀었거든요.
-.....
-그걸 이제 완성했는데, 늦어버렸네요 내가.
===
성운이 성우를 떠나겠다고 마음을 먹은 건 어쩌면 발리로 여행을 가자는 약속을 3번째쯤 미룰 때였다. 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무리하게 스케줄을 앞당겨서 해결하기 시작했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 하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 했다. 그 모든 게 전부 성운은 제 탓인 것만 같았다. 여행 그게 뭐라고 성우는 자신의 몸도 돌보지 못 하고 저를 위하는가 싶었다. 그러다 탈이 났다. 성우가 입도 원체 짧았지만 무리한 스케줄 덕에 음식이 제대로 넘어가지 않는다며 오히려 잠을 택하던 제 연인이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내려오다 쓰러졌다. 이 소식을 초록색 검색창 메인화면에서 보았다. 최악이었다. 물감이 묻은 앞치마 그대로 입고 냅다 달렸다. 기사에 적힌 광진구에 있는 K대학병원으로 택시를 타고 향했다.
-매니저님, 성우, 우리 성우 어떻게 된 거에요? 몇 호에요 저 지금 택시타고 가고 있어요.
-성운씨, 병원 앞이랑 병실 앞까지 기자들이 쫙 깔렸어요.
-괜찮은지... 성우 괜찮은지 얼굴만 보게 해줘요.
-성운씨가 지금 병원에 오면 더 곤란해져요.
-......
-성우 일어나면 전화하라고 할게요.
-..... 기다릴게요.
제 연인의 병실에 들어갈 수도 없는 상황이 화가 나고 슬펐다. 오지 말라는 성우 매니저와의 통화가 끊기고 그대로 다시 택시를 돌려 집으로 돌아왔다. 허무했다. 제 연인을 제가 볼 수 없다는 것이. 네 노래를 많은 사람이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성운의 바람대로 너무나도 유명해져버린 성우였다. 그때서야 너와 나의 위치를 체험했다. 넌 저 높이 하늘위에서 빛이 나고 있었구나. 성운을 위해 노래를 부른다던 성우는 어느새 저만의 것이라 말할 수 없는 위치에 올라있었다.
-왜 벌써 돌아왔어요?
-....그냥, 작업실에서 기다리려고.
-성우형이랑 통화했어요?
-대휘야 나는 성우를 곤란하게 만드는 사람이야?
-성우형이 그래요?
-아니, 아니야. 그냥 나 혼자 생각한 거야. 성우가 그럴 리 없잖아.
-하긴, 옹형이 형을 곤란하게하면 몰라도.
별일 아니라는 듯이 지나가는 말에 제 불안을 흘렸다. 아니겠지, 너와 나의 시간 속에 내가 널 곤란하게 만드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은 아니겠지. 너에게 내가 짐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 생각이 많아졌다. 성운의 불안함을 눈치 챈 건지 대휘가 성운이 앉은 소파 옆으로 와 앉았다. 성운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레 성운의 무릎에 누워서 제 태블릿 PC를 만지작거렸다.
-이거 들어볼래요 형?
-뭔데?
-요새 작곡한 곡인데 괜찮은지 형이 봐줬으면 해서.
-내가 음악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래도 형 듣는 귀는 좋잖아.
대휘가 태블릿 PC를 몇 번 만지작거리더니 가사 없이 멜로디만 흘러나왔다. 음만 들어도 이 노래를 부르고 있을 성우가 상상이 되었다. 조금 슬픈 노래일 것만 같은 멜로디에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예쁘다 대휘야. 성우랑 잘 어울릴 것 같아. 성우형만 생각한다며 대휘에게 타박을 들은 성운은 씁쓸하게 웃고서 눈을 감았다. 대휘가 피곤하면 눈 좀 붙이라며 제 작업실을 떠났다. 대휘가 작업실을 나서고 성운은 눈을 붙이려고 해도 정신은 또렷해졌다. 언제 성우가 전화할지 모르니 핸드폰을 손에 꼭 쥐고서 불빛만 켰다껐다 반복했다. 성우가 병원에 입원한다고 한지도 이틀째. 날은 점점 흐려져 장마가 찾아오고 있었다. 성운은 연락이 없는 성우 때문에 애가 탔다. 정작 성우는 쓰러진 당일 날 아무도 모르게 극비로 퇴원했었다. 제게 넘쳐나는 관심에 정작 소중한 이도 뒤로 미뤄두었다. 매니저에게서 성운이 전화를 기다린다는 말을 전달받았었다. 폰을 킬 수가 없었다. 폰을 켜면 밀려드는 모르는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와 메시지에 금방 또 방전되었다. 지쳐갔다. 누군가의 관심과 애정이 자신을 말라가게 했다.
-성운이형, 집에 있어요?
-아니, 대휘야 나 작업실.
-성우형 내일 음악방송 바로 나온다는데 괜찮은 건가 해서요.
-…무슨 소리야?
-성우형… 연락 아직 안 왔어요?
너와의 관계가 위태로워지고 있다. 그대로 대휘와의 통화를 끊고 성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길고 긴 신호가 계속되어도 전화는 상대와 연결될 줄을 몰랐다. 애가 타 죽을 것만 같았다. 결국 성우의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다.
-매니저님, 성우가 전화를 안 받아서요.
-아, 방금 녹음 들어갔는데 성우한테 할 이야기 있어요?
-녹음 들어갔다고요? 성우 언제 퇴원했어요?
-당일에 바로 퇴원했는데, 성우가 전화 안 했어요?
-..... 성우한테 전화 달라고 전달 좀 해주실래요.
-알겠어요.
TV 어느 채널을 틀어도 성우가 나오는데 정작 성운은 성우를 볼 수가 없었다. 성우의 목소리가 서울 어디를 걸어도 나오는데 성운은 성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만인의 연인인 성우이기에 오롯이 성운의 것은 이미 없었다. 성운은 성우와 자신과의 관계가 풍선을 들은 아이와 같다 생각했다. 제가 손을 놓으면 하늘 높이 올라갈 수 있는 풍선. 그게 싫어서 꼭 잡고 있는 아이. 성운은 이제 제 풍선을 놓아주려 했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내가 널 놓아줄게.
===
대휘가 들려준 곡을 한참을 듣고 성우는 알 수없는 눈물을 흘렸다. 멜로디가 슬퍼서인지, 아니면 성운이 제게 잘 어울린다고 한 그 말 때문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대휘가 주고 간 노래만 사흘째 집 안에서 반복으로 흘러나왔다. 절대 괜찮아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이별에 점점 익숙해져 가는 것만 같았다. 담담히 펜을 들었다. 지금 당장 성운에게 하고 싶은 말을 가사로 썼다. 너무나도 불행한 자신에게 이 노래를 듣고 아주 만의 하나, 자신이 불쌍해져서 다시 찾아오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적어 내려갔다.
누구를 위한 이별이었는지
그래서 우린 행복해졌는지
그렇다면은 아픔의 시간들을
난 어떻게 설명해야만 하는지
돌아와 네가 있어야 할 곳은
바로 여긴데 나의 곁인데
돌아와 지금이라도 날 부르면
그 어디라도 나는 달려 나갈 텐데
돌아와 우리 우연한 만남이 아직도 내겐 사치인가 봐
돌아와 나를 위한 이별이었다면
다시 되돌려야 해
나는 충분히 불행하니까.
성운이 이별을 고한지도 벌써 4년째. 헤어지고 나서 매년 내는 성우의 정규앨범 제일 첫 트랙은 항상 같았다.
00. 날 위한 이별.
성운이 제게 잘 어울린다고 말한 그 곡, 대휘가 선물해준 그 곡, 그리고 제 오롯한 마음을 적은 그 곡은 항상 제 앨범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흘러나왔다. 어디선가 자신의 앨범을 성운이 혹시 들었을 때 가장 처음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라디오에서도 TV에서도 성우에게 한 곡 불러달라는 요청이 오면 가장 많이 부른 곡이었다.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른 만큼 더 간절했다. 어느 곳을 가더라도 이 노래는 꼭 한 번은 흘러나왔다. 제발 어디서든 성운이 이 노래를 꼭 한 번은 듣기를 바랐다.
-성우야 성운씨 찾았다.
-어디에요?
-지금 당장 내려갈 거야?
-응, 형 나 스케줄 뒤에 있는 거 다 빼줄 수 있어요?
-.....알았다.
매니저가 준 종이에는 강원도 어느 한적한 곳이 적혀있었다. 내비게이션에 적힌 주소를 찍고 차를 몰았다. 이 곳에서 너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우리의 4년 그 후로 단 한번이라도 내 노래를 들은 적이 있을까. 어쩌면 이 먼 곳까지 너는 날 잊으려고 숨은 걸까. 올해 장마는 조금 늦게 시작해서 끝난다더니 그게 오늘이었나 보다. 보름 전만해도 하늘이 뚫린 것만 같이 내려대던 장맛비가 점점 잦아들었다. 늦은 밤, 가로등 불도 거의 없는 이 곳에 성운이 네가 있을까 싶었다. 불이 다 꺼진 집에 초인종을 눌렀다.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문을 두드려도 성운의 이름을 불러도 조용하기만 했다. 또 어디로 숨어버린 건지 머리가 아파왔다. 제 목소리에 나온 옆 집 할머니 한 분이 성우에게 말을 걸었다.
-하얀 총각 만나러 온 거야?
-.....네.
-밤늦어야지 올겨. 오늘은 별 보러 갔다가 늦게 온다 했으니깐.
-어르신, 거기가 어딘지 아세요?
-여기서 얼마 안 멀어. 저기 마을 끝에 천문대 거기 갔다 온다 하더라고.
감사하다며 인사를 하고 천문대로 차를 몰았다. 이 곳에 무엇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깜깜한 어둠뿐이었다. 한참을 달리다보니 천문대가 나왔다. 그 문 앞에 웅크리며 앉아있는 인영이 눈에 띄었다. 성운이었다. 누가 봐도 하성운이었다. 급히 차를 주차하고 달려갔다. 성운과의 거리가 줄수록 심장이 빨리 뛰었다. 성운이 고개를 들어 정면을 쳐다보면 자신을 볼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오히려 성운은 천문대 문을 열고 나타난 남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발이 땅에 붙은 것 마냥 성우는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이고 그 상황을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어둠에 자신을 숨긴 채 성운이 그 남자에게 안겨서 문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4년 전에 온 장마는 여전히 성우에게만 끝날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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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이란 시간이 내게는 너무 짧았는데, 너는 너무 길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