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바라기를
Written by 흐름
비가 쏟아지던 날, 오후 10시경, 어두운 골목길에서 너를 만났다.
xx년 11월 05일, 강아지 한 마리를 주웠다. 강아지는 귀찮지만 버리고 가려니 낑낑대는 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입양 보낼 때까지 귀찮게 굴지만 않으면 좋겠다. 아, 빨리 입양도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강아지 (임시 이름은 구름이라고 하기로 했다) 가 낑낑대며 운다. 딱히 고운 시선이 아닌 것을 알아챘는지 귀찮게도 군다. 오늘은 늦었으니 모르겠고 내일 병원이나 데려가야겠다.
성우는 일기장을 덮고선 일어나 식탁으로 향했다. 강아지 -이하 구름이- 는 사람 손을 많이 탄 것 마냥 익숙하다는 듯이 성우를 졸졸 따라갔다. 성우는 급하게 사 온 강아지 간식을 찾아 편의점 봉투를 뒤적거렸고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날 때마다 구름이의 귀가 쫑긋거렸다. 성우가 강아지 전용 간식을 개봉한 뒤 구름이의 입에 가져다 대자 구름이가 헥헥거리며 꼬리를 흔들었다. 하지만 좋아 죽겠다는 눈을 하고서도 성우의 눈치를 보며 그저 성우를 바라보기만 하였다. 둘의 기나긴 눈치싸움 끝에 성우가 먹어도 돼, 라고 말을 하자마자 허겁지겁 간식을 입에 물었다. 참으로 영특한 강아지였다. 성우는 구름이가 전주인에게 꽤나 사랑받고, 엄격한 훈육을 받은 것 같다고 어렴풋이 짐작했다.
"구름아,"
"-멍!"
"옹구름."
아냐 아냐, 옹구름은 뭔가 이상하잖아. 그리고 네 강아지도 아닌데 성을 왜 붙혀 옹성우. 성우가 혼자 자책하는 사이 구름이는 성우가 꽤 마음에 들었는지 망망하고 짖어대며 성우의 다리에 몸을 비벼댔다. 하얀 털뭉치가 애교부리는 모습이 썩 나쁘지 않았던 성우는 쇼파로 구름이를 안고 데려갔다. 티비를 켜 재방송 중인 예능을 보며 구름이의 배를 만지작거리던 성우가 문득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어 황민현, 어어, 아- 강아지 주워왔거든."
"~"
"-그래서 내일 너네 병원 가려고, 응."
이 영특한 강아지는 자신의 얘기인 것을 기가 막히게 알아채고는 작게 짖어대며 성우의 품에서 바르작거렸다. 구름이의 애교에 자신도 모르는 미소를 지은 성우는 구름이의 온몸을 쓰다듬으며 전화통화를 마쳤다. 전화를 끊자 더 난리를 치며 애교를 부리는 구름이에 성우는 육성으로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이 요망한 강아지가, 어?"
"망!"
"처음 보는 사람한테 이렇게 애교부려서 어떡할래요, 응?"
"마앙!"
"물론 나는 착한 사람이지만, 나 아녔으면 어쩔 뻔했어."
성우는 원래부터 말이 많은 사람이라 밖에서 사람들하고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했는지 집에서도 곧잘 혼잣말을 해왔었다. 들어주는 이가 없어도 혼자 말을 그렇게 많이 했었는데 들어주는 강아지가 생겼으니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할 일이 없었다. 처음에 조용히 일기를 쓰던 성우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구름이에게 오늘 온종일 있었던 일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시상이 안떠오른다 부터 편집자 새끼 욕까지 하는 동안 구름이는 자신이 정말 성우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는 마냥 중간중간 짖어대며 성우의 품에 안겨있었다.
"옹구름, 잘 자"
"멍멍!"
그 잠깐 사이에 정이라도 들었는지 성우가 아무에게도 내어주지 않던 침대 옆자리를 내어주었다. 성우는 몸을 둥글게 말고 있는 구름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구름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어떻게 이 조그만 몸이 살아 움직이는 지도 궁금했고 제 손 아래로 느껴지는 온기와 호흡이 너무나도 신기했다. 그래, 그저 신기 할 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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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민현 나 왔다."
"어어 왔냐?"
"구름이도 데리고 왔어."
"그새 이름도 지어줬냐? 아 귀여워 진짜 귀엽다 얘."
"아무래도 주인 있는 거 같지?"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아 조금만 기다려 검사 준비하게."
"어야."
민현이 검사를 준비하러 간 사이 구름이가 성우에게 달라붙었다. 안아달라고 다리에 매달리며 떼를 쓰기에 성우는 귀찮아하면서도 구름이를 안아 들었다.
"아무래도 성우 네가 임보 좀 해야 할 거 같다."
"뭐?"
"너도 알잖아. 병원도 사정 안 좋은 거."
"그건 알지만..."
"그렇다고 다른데 보내면 안락사당할지도 몰라, 괜찮겠어?"
"..."
"그리고 구름이가 너를 주인으로 인식한 거 같기도 해."
"...일단 알겠어."
"후, 진짜 다행이다. 내가 사료랑 최대한 이것저것 준비해줄게."
"어 그래. 고맙다."
구름이도 제가 성우와 함께하게 된 것을 알았는지 발발거리며 성우에게 안겼다. 성우는 웃는 것도 정색하는 것도 아닌 묘한 표정을 짓고는 구름이를 안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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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년 11월 6일, 구름이와 함께 살게 되었다. 하루 사이에 정이라도 들었는지 이름이 입에 붙었다. 귀여운 강아지니까 일주일 정도면 금방 주인이 나타나지 않을까 싶다. 좋은 주인을 만나서 남은 견생을 행복하게 보내렴 구름아. 내 정이야 뭐,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겠지. 아 구름이는 아직 애기다. 9개월 정도라고 한다. 완전 어린 거 같다. 같이 자다가 깔아뭉개면 어쩌지. 따로 자야 하나 싶다. 아 강아지는 순발력이 있으니까 괜찮을지도 모른다. 구름이가 원하는 대로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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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년 11월 10일, 아직도 구름이의 새로운 임보처나 주인이 되겠다는 사람은 나오지 않고 있다. 나는 구름이를 만난 지 5일째가 됐다. 그래서 요즘 큰 걱정이다. 가면 갈수록 구름이가 좋다. 하지만 나는 아직 한 마리의 견생을 책임질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빨리 새 주인이 나왔으면 좋겠다. 내가 더 구름이에게 마음이 뺏기기 전에 정을 뗄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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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년 11월 12일, 구름이를 만난 지 일주일째다. 난 이제 구름이가 너무 좋다. 이렇게 내가 행복할 수 있을 줄 몰랐다. 비록 일주일이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밝은 일주일이었다. 구름이는 참 착하다. 헛짖음도 없고 낑낑거리지도 않고 밥도 잘만 먹는다. 애교도 여전히 많고 아픈 데도 없다. 일을 할 때도 함부로 나에게 덤비지 않고 혼자서 잘 논다. 짬짬이 시간을 내서 놀아주기도 하지만 나보다 더 구름이에게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이 구름이와 평생을 함께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 그게 구름이에게는 훨씬 행복하지 않을까?
사실 내가 구름이와 평생을 함께하는 그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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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년 11월 19일, 구름이와 함께 한지 이주일이 되는 날이었다. 사실 오늘 구름이를 입양하고 싶다는 사람이 왔었다. 내가 구름이를 데리고 민현이네 병원에 가서 그분을 직접 만나보기로 하였다. 그런데 그분을 만나자마자 구름이가 처음 보는 모습을 하며 엄청나게 짖었다. 잇몸을 드러내고 위협하는 모습에 그분이 뒤로 물러서자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나에게 돌아왔다. 결국 그분은 구름이가 나를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입양을 하지 못할 것 같다고 하셨다. 난 속이 상했지만 한 편으로는 기뻤다. 구름이와 조금이라도 더 함께할 수 있게 되었다. 구름이가 나만 바라봐 주는 것도 좋다. 사실 이러면 안 되는 데, 난 정말 이기적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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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년 12월 5일, 올해의 마지막이 다가온다. 나는 구름이와 가족이 되기로 결심하였다. 구름이가 내 곁에 와준 지도 벌써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나는 그동안 구름이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고 구름이와 앞으로 함께 할 준비를 하였다. 구름이를 만난 후 내 삶은 참 많이도 변했고, 결국 난 구름이를 책임지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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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년 12월 11일, 요즘 들어 구름이가 참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는 것 하며, 한 번도 욕심을 부리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개라고 하기에는 너무 인간적인 면모가 많다. 그리고 사실 어제 꿈에 구름이와 똑같이 생긴 요정이 나왔다. 소원을 단 한 가지 들어주겠노라고. 그래서 난 온종일 소원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내 장래와 관련된 소원이나 돈, 권력 등 많은 소원 후보가 있었지만 단 한 가지라면 나는 그런 소원을 빌고 싶었다.
구름이가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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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는 여느 때처럼 일정한 시간에 눈을 떴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성우의 다음 일과는 양치 및 세안이었고 성우는 그를 실행하려 했다. 하지만 성우의 몸을 짓누르는 무게 때문에 일어날 수가 없었다. 사실 성우의 배 위는 구름이의 지정석이 되었다. 그렇기에 성우는 그 무게에 항상 익숙해져 있었는데 오늘은 무엇인가가 달랐다. 기시감에 눈을 게슴츠레 뜬 성우의 눈에는 익숙한 흰 털이 아닌 검은 색의 머리털... 그래 머리카락 같은 털이 있었다. 식겁을 한 성우가 소리를 지르기도 전, 성우의 몸을 짓누르던 무게가 한순간 사라졌다.
"성우!"
"...예?"
"나 구름이! 성우!"
"...? 예?"
"성우가 소원 했어. 구름이 뿅 했어!"
"예?"
자신을 구름이라고 지칭하는 미심쩍은 사내의 설명(이라기엔 많이 부족하지만)에 따르면 성우가 빈 소원 때문에 사람이 되었다는 것 같았다. 성우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지만,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있는 사내가 증명하고 있었다. 성우가 그 사내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 사내가 소름 돋게도 구름이를 너무너무너무 빼닮았기 때문이다. 생물학적 차이 때문에 검고 반짝거리는 눈과 살짝 올라가 입꼬리를 제외하고는 실질적으로 닮았다고 할 수가 없었지만, 그 전체적인 생김새나 분위기가 너무나도 나 구름이요! 라고 외치고 있었다.
"구, 름이?"
"응! 성우! 나 구름이!"
신이시여, 정녕 제 소원을 들어주신 겁니까. 그렇다면 예고라도 하시지... 성우는 신을 원망했다. 어젯밤 일기를 적을 때만 해도 정말 구름이가 사람이 됐으면 하였다. 하지만 그것을 진심으로 바란 이유는 실제로 이루어질 수가 없는 정말 판타지스러운 소원이기 때문에 바란 것이었다. 그런데 그 터무니없는 소원이 이루어졌으니 신을 원망하지 않을래야 원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성우 나 배고파..."
"어어... 그래 뭐, 뭐 먹여야 되지? 사람인거야? 다시는 안 돌아가? 원래 사람이었던거야? 넌 어디까지 알고있어?"
"성우, 천천히 물어. 구름이 힘들어."
개일 때의 애교스러움은 어디 가고 단호함이 하늘을 찌른다. 이쯤에서 성우는 참 이도 저도 못하게 뻘에 빠진 아이처럼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신이 저를 미워해도 죽도록 미워하나 보다. 구름이가 사람이 된 것이 저를 위한 소원인가 싶다. 물론, 좋은 점도 있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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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년 12월 12일, 구름이가 사람이 되었다. 지금도 옆에서 기웃거려서 신경이 쓰인다. 인간으로서의 기본 지식은 있는지 어눌하지만, 말을 할 줄 알고 웬만한 단어도 거의 숙지하고 있다. 글도 읽을 줄 알고 밥도 먹을 줄 안다. 걸을 수도 있고 옷도 입고 양치도 한다. 하지만 구름이의 말로는 인간이었던 적은 없단다. 뭐 내가 생각하기엔 전생은 분명 사람인 것 같지만... 아니 근데 정말 꿈은 아니겠지. 참, 좋기도 하고 얼떨떨하기도 하다. 내가 어떡하면 좋을까? 구름이와 평생을 함께하게 된 것은 좋지만 구름이도 이제 사람이다. 만약 나를 떠나고 싶다면? 그때는 구름이를 보내줘야 하는 것일까? 나는 이제 어떡하면 좋지? 이런 기적 같은 일이 내 인생에 또 한 번 일어나다니. 처음 기적은 정말 하늘에 절이라고 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참... 하늘에 침이라도 뱉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