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더 이상 울지 않는다
Written by 형
옛날 옛날에-
사람들이 사랑한 푸른 물이 있었어. 이 물은 너무나 넓고 깊었지. 사람들은 이를 “바다”라 불렀어. 바다는 사람들이 너무 좋았어. 하지만 바다는 움직이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 싫었어.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좋았고 고마웠지만 바다는 이 생활이 지루했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미소를 잃어가는 바다를 사람들은 걱정했어. 물장구를 치며 놀고 같이 헤엄도 치며 놀아도 바다의 미소는 돌아오지 않았지. 결국 지친 사람들은 하나 둘 바다를 떠나기 시작했어. 사람들에게 마저 더 이상 사랑을 받지 못하게 된 바다는 홀로 남아 눈물을 흘렸지.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어. 눈물 때문에 자신이 더 불어나는 것도 미쳐 생각하지 못한 채 말이야.
계속 눈물만
뚝
뚝
그렇게 한참을 바다가 울고 있을 때 어디선가 바다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바다야- 바다야’ ‘왜 그렇게 슬프게 우는 거니’
바다는 계속해서 서럽게 울면서 말했어.
‘나는 너무 외로워’ ‘하지만 나는 움직일 수도 없어 움직이는 방법을 모르거든’ ‘움직일 수만 있다면 혼자서라도 저 멀리 자유롭게 여행을 떠날 텐데’
‘내가 도와줄까?’
그렇게 말을 한 바람은 후우-하고 바다를 향해 숨을 뱉었어. 그러자 마법처럼 바다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거야.
‘우와- 내가 움직여! 고마워. 네 이름은 뭐니?’
‘내 이름은 바람이야’
‘내가 있다면 넌 어디든지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바다와 바람은 둘만의 여행을 떠났어. 바람은 바다를 움직이고 바다는 수천 킬로를 날며 여행을 했지. 그 후 바다는 다시 미소를 돼 찾아서 계속해서, 계속해서 바람과 함께 끝없는 여행을 했어.
사람들은 다시 미소를 되찾은 바다를 ‘파도’ 아니 ‘파랑’이라 불렀어. 파랑 혼자였으면 아마 아무것도 해내지 못한채 눈물만 흘리며 외롭게 외롭게 살아갔을 거야. 하지만 이 모든 게 바람이 있어서 달라지게 되었지. 파랑이 여행을 떠 날 수 있게 된 것도, 움직일 수 있게 된 것도 그리고 미소를 되찾을 수 있었던 것도 다 바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거야. 그래서 바다는 이제 더 이상 울지 않게 되었지. 모두 바람이 있었기에 바다는 파랑은 숨쉬며 살아 갈 수 있게 된거야.
이 모두 “바람”이 바다 곁에 있었기에.
바다는 더 이상 울지 않는다.
김재환x하성운
w.형
“어후- 삭신이야-“
“선생님 여기요, 오늘도 수고 많으셨어요”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여름, 바깥으로 우르르 달려 나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창가에 서 있던 나는 기지개를 쭉 피며 앓는 소리를 냈다. 성운의 앓는 소리를 들은 건지 해님 반 선생님이 성운의 어깨를 툭툭 치곤 살갑게 웃으며 다가왔다. 대충 눈인사를 한 뒤 선생님이 건네준 음료를 받아들고는 성운은 다시 창가로 고개를 돌렸다.
어이쿠 아프겠다 그러니까 밖에서 뛰는 건 위험하다니깐- 창가 넘어 넘어진 아이를 보며 자신이 넘어진 것 마냥 아픈 표정을 짓던 성운은 넘어진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가볍게 손인사를 하며 괜찮냐는 입모양을 지어 보이자. 아이는 코를 한번 훌쩍하더니 제 무릎을 탈탈 털어내고 다시 제 친구들 쪽으로 뛰어갔다. 그래도 안 울고 착한 아이네.
이번 해로 벌써 3년 째인가. 성운은 이 ‘바다 유치원’의 보조 교사로 ‘알바’를 하고 있다. 말이야 보조 강사지 일주일에 두세 번 유치원에 출석해 아이들에게 오전 오후 두 타임에 걸쳐 동화책을 한 권씩 읽어주는 일이 다였다. 작은 섬이라서 그런지 마을이라고 해 봤자 하나뿐이었고 유치원도 하나 초등학교 중학교는 통합해서 하나, 고등학교도 하나뿐이었다. 그런 작은 시골 섬마을에는 신기하게도 아이들이 유독 많았다. 뭐 생각해보면 섬마을 치고는 인구는 많은 편이었다. 다들 성인이 되면 대학가랴 일 자리 구하랴 다들 배 타고 멀리멀리 도시로 나갔을 뿐이지.
아이들에 비해 젊은 인력이 부족했던 마을 유치원은 급하게 보조 강사를 구하기로 했고 대학도 안 가고 취업도 안 하며 알바로 먹고 살고 있던 성운에게 아르바이트 자리가 하나 더 생기는 일은 행운 아닌 행운이었다. 나름 아이들도 좋아하고 어느 정도 사람 대하는 게 몸에 배어있던 성운은 이 일이 천성이었는지 보조 교사로서의 역할에 금세 적응을 했고 그 덕에 햇수로 벌써 3년째 유치원 보조 교사로 알바를 뛰는 중이었다.
“우니선샌니임-!!”
오후 타임 일도 끝났겠다. 다른 알바를 하러 원장 선생님과 동료 선생님들께 인사를 하고 나가려던 참이었다. 체리 모양 방울로 양쪽 머리를 예쁘게 땋은 하늘 반 순영이가 작은 발로 성운에게로 통통 뛰어왔다. 이 맛에 선생님 하지…
“어 순영아, 왜?”
미운 다섯 살 미운 다섯 살 하지만 그 나이에 맞게 포동포동 오른 볼살과 약간 붉은 뺨. 동글동글한 콧방울을 가진 아이는 솔직히 너무…
귀여웠다.
뛰어오는 순영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성운은 조금 변태같이 쳐다봤나 싶은 마음에 민망해하며 목을 한번 가다듬고 대답을 기다리며 초롱초롱 쳐다보는 순영의 눈을 맞추며 대답을 했다. 근데 순영아 너 자꾸 선생님 그렇게 올려다보면 선생님 심장이 조금 힘들어요.
“오늘을 선샌님이 읽어주신 책 있잖아요-"
오늘 뭘 읽어 줬었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고 오늘 읽어준 책 제목도 벌써 가물가물 하다. 순영아.. 나는 바보 어른이야.. 커서 나 같은 선생님 되면 안 된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책 제목이 기억이 나지 않아 미안한 마음에 초롱초롱 빛나는 눈을 슬쩍 피하는데 순영이 해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바다느은 바람 덕 부네 행복 해짜나요”
아- 오늘 그 책 이구나. 이제야 기억이 난 성운은 순영이의 눈 높이에 맞춰 무릎을 굽혀 앉았다.
“그런데 바람은 행복했었어요?”
조잘조잘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줄줄이 뱉는 순영의 모습이 귀여워 머리를 한번 쓸어 주려고 든 손을 이어지는 순영이의 말에 잠시 공중에 멈춰 세웠다. 바람이 행복 했었냐니.
순영의 질문을 한 번 곱씹은 성운은 아주 잠시 굳었던 표정을 풀고 미소를 지으며 다시 손을 움직여 순영이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순영이 생각은 어떤데?”
“우움.. 순영이는..”
왜 인지 자꾸만 잘게 떨리는 손에 순영이 힐끗 위를 올려다보자 성운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표정을 지어 보이고 손을 거두어 주머니 속에 넣었다.
“바다는 바람 때무네 행복했으니까 바람도 행복했었을 것 같아용”
선샌님 안녕히 가세용. 그래 순영이 안녕-
대충 신발에 발을 욱여넣으며 문을 열고 나가는 성운은 배웅을 해주는 순영이에게 손 인사를 하고 유치원 교문 밖으로 나섰다. 여름은 여름인가 보다 해가 기네. 여름이라 그런지 오후 5시가 넘었는데도 아직까지 후덥지근 한 날씨에 옷깃을 살짝 펄럭이며 걷는데 오른쪽 바지 주머니 속에서 경쾌한 벨 소리가 울렸다. 어 지훈이네.
“엉, 왜”
“형 지금 어디야?”
“나 지금 가는 길. 근데 너 왜 안 하던 존대를 다 하고 그러냐 소름 돋게.”
“아…”
“왜, 또 지성 씨께서 나 자른다고 노발대발해? 끽해 봤자 5분 정도 늦는 거 가지고 쪼잔하게. 하여간 그 형은 성격 좀 죽여,”
“아니 형, 그게 아니라”
글쎄
“형 오늘 하루 아르바이트 쉬래."
“엥? 그 심술 영감 윤지성이? 웬일? 이거 오늘 하루 쉬라 해놓고 평생 쉬어라- 막 이러는 거 아냐?”
바람이 행복했더라면
"됐어. 몸이 두 동강 나더라도 간다.”
“그,”
“나 지금 뛴다? 뛰어- 좀 이따 보자 동생. 끊어”
바다를 떠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
지훈의 말을 듣고 이개 웬 개 이득! 하며 곧장 집으로 달려가 여태 채우지 못 한 잠이라도 충분히 보충했어야 했나. 지훈과 통화를 마치고 또 다른 일터인 지성이 형의 카페에 진짜로 뛰어 도착한 성운은 카페 유리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광경에 나는 1차로 헛것을 보는 줄 알았고 2차로 지훈의 말을 듣지 않고 카페로 온 것에 대해 바로 후회를 했다. 성운에게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우진, 그 옆에서 눈치를 보던 지훈, 무표정으로 바닥만 닦는 관린, 저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미안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머리를 감싸 쥔 지성의 모습을 한 번씩 훑어본 뒤 그들을 뒤로 한 채 뒤를 돌아 제가 들어온 유리문을 다시 열었다. 나는 아무것도 못 봤다 아무것도 못 봤어. 오늘 생각보다 너무 피곤했었나 헛것이 다 보이네. 집 가서 자야지 안되겠네- 그렇게 성운이 유리문 밖으로 발을 한 발자국 내딛는 순간 뒤에서 누군가 성운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성운아”
“안녕”
바람이다.
파도를 외롭게 두고 아무 말 없이 홀로 떠난 바람.
김재환이 돌아왔다.
“오랜만이야”
성운은 재환이 괘씸했다. 그래서 죽도록 미웠고 다시 볼 일도 당연히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김재환이 다신 보지 않을 줄 알았던 김재환이, 아무 말없이 그냥 떠나 김재환이, 삼 년째 아무런 연락조차 닿지도 하지도 않았던 김재환이 성운의 앞에 갑자기 나타나서 오랜만이라는 속 편한 소리를 해댄다. 마치 일주일 정도 밖에 안 지났다는 듯 성운이 제일 싫어하는 눈웃음을 살랑살랑 쳐대며 말이다.
“누구세요”
유치하지만 모르는 척한다면 민망해서라도 그냥 둘 줄 알았다. 성운은 끝까지 뒤를 돌지 않은 채 유리문 손잡이를 잡고 말했다. 지금 네 얼굴 보면 없던 화도 생길 것 같단 말이지
“잘 지냈어?”
“뭐?”
뭐? 정말 뭐? 다 못 들어서 다시 묻는 뭐? 가 아닌 어이없음의 의미 뭐? 성운은 순간 진심으로 미친 건가 싶었다. 그렇게 나를 무너뜨리고 간 사람이 뻔뻔하게 ‘잘 지냈어?’ 란다. 그 쯤 했으면 이제 제발 좀 닥치고 그냥 곱게 가라. 나 이제-
“다행이다 행복하게 사는 것 같아서”
“너는 씨발, 그런 말이 나오냐?”
“성운아!”
더 이상은 못 들어 주겠다. 성운은 그대로 뒤를 돌아 아직도 실실 쳐 웃으며 헛소리만 나불거리는 그 재수 없는 얼굴에 있는 힘껏 주먹을 갈겼다. 성운의 행동을 보고 놀란 지성이 성운의 이름을 크게 외쳤지만 성운은 저 재수 없는 면상을 치우는 게 더 중요해 그런 건 상관없었다.
나 진짜 말리지 마. 있는 힘껏 얼굴이 쳐도 풀리지 않는 마음에 성운은 자신의 주먹에 맞고 잠시 휘청거리다 입가를 매만지는 그 얼굴 앞에서 한 마디 라도 더 하면 한대 더 쳐줄 심산으로 서 주먹을 털며 씩씩거렸다.
“성운아”
“닥쳐, 내 이름 부르지 마 좆같으니까”
“성운아”
“닥치라고”
저 새끼는 생각이 없는 걸까 눈치가 없는 걸까. 어렸을 때부터 눈치 없는 건 알았었지만 저 정도로 사람을 화나게 할 만큼 눈치가 없는 줄 몰랐다. 점점 살벌해지는 분위기에 바닥만 연신 닦던 관린이도 밀대 걸레를 치우고 아무 말없이 성운의 쪽을 쳐다보는 우진과 지훈의 옆에 서 아직은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성운 쪽을 바라봤고 지성은 아까보다 안절부절한 모습으로 성운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마침 카페에 손님이 없어서 망정이지 손님이라도 있었으면 장사에 아마 타격이 컸을 것이다.
조용히 입술을 매만지던 김재환은 오른뺨이 살짝 부어올라있는 얼굴을 들어 성운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고 성운 또한 지지 않으리라 똑바로 야렸다. 꽤 세게 때렸는데 아프지도 않은 건지 부은 얼굴을 하고서 하는 말이,
“보고싶었어 성운아”
“씨발!!”
그 말은 성운의 핀트가 나가게 하기에 충분한 말이었다. 성운을 화나게 하기로 작정하고 온 거라면 성공이야 축하한다 개새끼야. 성운은 재환의 말이 끝나자마자 주먹을 들어 올려 다시 한번 얼굴을 갈기려 하는 순간, 지성이 다급하게 다가와 성운의 허리를 끌어안았고 그 양으로 우진과 지훈이 성운의 양쪽 팔을 붙잡았다.
“성운아-! 제발, 제발 참아”
“형 이제 그만해..! 심호흡, 심호흡.”
“그만해요. 아이고- 여 손 부은 것 좀 봐라. 형님 맘 잘 알겠는데 일단 좀만 참읍시다.”
얘들은 왜 나한테만 이래? 양손을 붙잡힌 채 지성이 형한테 허리까지 끌어안긴 자세는 꽤 우스꽝스러웠지만 그 덕인지 성운은 계속 씩씩대던 것을 멈추고 제 호흡을 찾았다. 그에 한시름 놓은 우진이 제 손에 힘을 푸는 순간 재환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재환이 입을 염과 동시에 성운을 붙잡던 세 사람의 원망 섞인 눈빛이 재환에게 날아갔고 성운은 주먹을 날렸다. 얼굴에 닿기도 전에 관린의 손에 붙잡히고 말았지만.
성운이 이 세 사람에게 붙잡혀 한참 씩씩거릴 때만 해도 남일인 양 팔짱을 낀 채 관심 없다는 듯 서 있던 관린이 언제 왔는지 김재환에게 날리려는 주먹을 제 손으로 붙잡았고 그 뒤, 뒤를 돌아 재환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재환이 형, 오늘은 그만 가세요.”
그 말에 성운이 소리 지를 때만 해도 꿈쩍 않던 재환이 아무 말 없이 돌아서더니 제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시발 저 새낀 이 상황에도 사람을 처 가리냐 어떻게 저렇게 꺼지는 모습까지 재수 없어. 그 모습에 성운을 붙잡은 지성과 지훈의 팔에도 힘 풀렸고 완벽하게 자유로워진 성운은 김재환에 등에 대고 쌍퍼큐를 날렸다. 이제 제발 다시 보지 말자.
“… 그럼 다음에 보자”
제 짐을 챙긴 재환은 코트를 팔에 걸치고 형과 동생들에게 다음에 보자는 인사를 했다. 그에 맞춰 가볍게 눈인사를 하는 형과 동생들의 모습에 성운은 팽- 코웃음을 쳤다. 다음에 보긴 뭘 다음에 봐.
“성운아, 다음에 봐”
눈인사를 마친 재환의 시선은 투덜대던 성운에게 닿았고 그에 다음에 보자는 헛소리를 한다. 개소리야
“개소리 작작해. 다신 내 눈앞에 나타나지도 눈에 띄지도 마”
죽여버리고 싶으니까. 겨우 뒷말을 삼킨 성운은 문을 여는 재환을 있는 힘껏 노려보았고 내 말에 뒤를 돌아 무어라 더 말을 하려다 입을 꾹 다물고 문을 열어 문밖으로 나갔다. 그래 제발 가라 가.
재환이 나가고 다리에 힘이 풀린 성운은 겨우 힘을 준 채 뒤를 돌아 지성을 쳐다보았다. 성운이 쳐다보자 찔리는 구석이라도 있는지 슬금 슬금 성운의 눈을 피한다. 얼씨구?
“형 나한테 할 말 없어?”
“미안하다…”
성운의 눈치를 보며 사과를 하는 지성의 모습을 보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다 알고 있던 눈치였다. 왜 다들 나만 왕따시키는데, 최소 언질이라도 해줬으면 저 얼굴 다시 볼 일 없었잖아. 왜 다들 나한테 숨기려고만 하는데
“성운아, 그래도 이젠 용서해 줄 때 되지 않았냐. 최소한 이야기라도,”
“뭐? 형까지 왜 이래? 아까 나 말리던 너네도 그렇고 형도 그렇고 다들 왜 나한테 그래? 나 버리고 간 건 쟤잖아!”
“성운아 재환이는…!”
“지성이 형 그만해요”
하! 아주 둘이 콩트를 하시지 그래요. 지성이 무어라 말하려는 걸 제지한 관린이 성운을 보더니 이만 가보라는 눈짓을 한다. 뭐야 진짜 왜들 이래? 나 버리고 떠난 것도 쟤고, 내가 잘 못 한 건 하나도 없는데 왜 다 쟤를 감싸고돌아?
둘의 행동에 헛웃음을 지은 성운은 인상을 확 구기고는 앞의 관린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쳐 문 밖으로 향했다. 하나같이 다 마음에 안 들어.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밖으로 나가 점점 멀어지는 성운의 뒷모습을 보던 지성이 입을 열었다.
“그래도 성운이한테 이야기해 줘야 하지 않냐. 둘이 언제까지 저렇게 내 버려 둘 거야”
“재환이 형이 부탁했으니까 그냥 기다리죠 뭐. 저희가 얘기하는 것보다 직접 듣는 게 더 좋을 것 같고”
하긴.
관린의 말이 끝나자마자 마법처럼 갑자기 몰려오는 손님들에 다들 제 자리로 돌아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일을 하기 시작했다. 뭐, 알아서들 하겠지
아이고- 늙는다 늙어 내가.
***
‘너도 수영 좋아해?’
탁탁탁
‘내가 도와줄게’
쿵쿵 쿵
‘나랑 계속 수영하자’
띡띡띡- 띠리릭-
‘좋아해’
띠리릭- 쿵
시발-!
거칠게 도어록을 열고 들어온 성운은 급하게 집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한참을 거칠게 숨을 고르며 집을 뒤지던 성운은 이내 작은방 서랍에서 찾던 사진을 꺼내들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이제 거의 다 잊었는데… 왜, 도데체 왜 나타난거야…”
날 좀 그만, 가만히 나둬..
“형형형”
“어?”
왜왜. 마감시간이 다 되어 오픈 간판을 치운 후 다들 어기적 어기적 힘든 몸을 이끌고 마지막 정리를 하고 있을 때 걸레를 빨아 들고 오던 지훈이 카운터 정리를 하던 지성을 불렀다.
“아까…”
답지 않게 꼼지락거리며 말끝을 늘리는 모습에 지성이 갸우뚱거리다 마침내 살포시 웃으며 꼼지락거리는 지훈을 툭툭 쳤다.
“성운이?”
지성의 말에 정곡을 찔린 듯 흠칫 놀라다 두어 번 고개를 격하게 끄덕끄덕 거리는 지훈의 모습에 지성이 쓴웃음을 지으며 근처에 있는 의자를 끌어 앉았다.
“말하면 좀 긴데”
넌 이 마을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잘 모르겠지만 성운이가 처음부터 재환이를 치를 떨며 싫어했던 건 아니었어. 좋아하면 좋아했지. 둘이 아주 형제 이상의 수준으로 붙어 다녀서 동네에선 둘이 지나다닐 때마다 사귀냐고 놀려대기 바빴다니까- . 아 맞아. 근데 사실 재환이도 원래 이 동네 사람 아니었다? 원래 너처럼 서울 살다 온 친군데 건강 때문에 이쪽으로 건너왔다고 들었어. 근데 성운이는 몰라 재환이가 비밀로 해달랬거든 뭐랬더라.. 쪽팔린다고? 하여튼 그냥 애들의 알량한 자존심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말해버릴까 하다가 제발 비밀로 해달라는 재환이가 하는 말과는 다르게 표정이 너무 간절해서 우리 동네 어른들과 애들은 그냥 쉬쉬해 주기로 했어. 그래서 아마 지금까지 모를걸. 생각해보면 그냥 말할걸 그랬어 그럼 적어도 저렇게까지 싫어하지 않았을 거야.
아 말이 이상한 데로 새네. 어쨌든 그렇게 징글징글 하게 둘이 붙어 다니는 데에도 서로는 비밀이 아주 많았어. 성운이 재환의 건강을 모른다면 재환은 성운이의 과거를 몰랐어. 자기가 오기 전까지의 과거를 말이야. 성운이는 지금 저렇게 유치원에서 일하고 여기일 도와주고 살고 있지만 사실 꿈이 있었다? 성운이는 커서 수영선수가 되는 게 꿈이었어. 수영선수… 성운이가 유치원 다닐 때에도 하도 수영- 수영- 노래를 부르고 다녀서 동네 사람들 모두 성운이의 꿈을 알았고 열심히 지지해 줬어. 틈만 나면 저기 바다 보이지? 저쪽 해변에 가서 수영하는 거 구경 해주고 마을 사람들이랑 시합도 하고. 우리는 성운이가 커서 꼭 멋진 수영선수가 되리라 믿었어. 그 날이 있기 전까지는..
“형! 바다! 바다!”
“어엉…관린아 기다려, 준비운동하고 들어가야지”
“아이 괜찮아- 하루 이틀도 아니고! 형 빨리 와!”
성운이랑 관린이는 자주 수영하러 나가곤 했는데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수영하러 바다에 나갔어. 근데 그날따라 관린이가 왜 이렇게 텐션이 높았는지 바다를 보자마자 뛰어들어가는 거야. 그 모습을 보고 성운이는 준비운동해야 한다며 관린이를 타박했지만 관린이는 개의치 않고 더 더 안쪽으로 들어갔어. 그러는 동안 성운은 그래도 준비운동은 꼭 해야 한다며 열심히 준비운동을 하고 들어가려고 했데 그래서 준비운동을 하다며 한 눈 파는 사이 관린이가 커다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거야. 바다 안에서. 그래서 허우적거리며 떠내려가는데 그 모습을 발견한 성운은 엄청 놀라서 관린이를 구하고 싶었지만 몸이 떨어지지가 않았데. 어린 마음에 아니, 지금에 나라도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을 거야. 나까지 잘못되면? 이런 생각으로 성운이도 두려웠던 거지.
그래서 성운은 한참을 관린이의 살려달라는 외침과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어. 그러다가 지나가던 저어기 횟집 삼촌이 보고 달려와서 구해주고 다친 곳도 없고 관린이도 멀정하다고 괜찮다고 했는데 성운이는 너무 충격을 받은 거야. 그렇게 수영 수영 노래를 부르면 서 선수가 된다고 떵떵거릴 때는 언제고 막상 자기가 필요할 때는 문 앞에서 덜덜 떠는 자신이 끔찍하게 싫었데. 그래서 그때부터 수영을 포기했지.
자기는 해봤자 소용없다고 수영 같은 거 해서 선수 되면 뭐 하냐고 나중에는 또 문 앞에서 벌벌 떨 거. 그리고 그때 삼촌 없었으면 어떡할뻔했냐며.. 그때 일로 죄책감을 엄청 가졌지. 그렇게 수영을 포기하고 사는데 수영을 그렇게 좋아하던 애가 포기하는 게 쉽겠어? 며칠은 바다에도 안 가려고 하고 맨날 저녁마다 울었데.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꼬셔도 보고 관린이도 맨날 괜찮다며 위로해 줬었는데도 돌아오는 건 괜찮다며 짓는 쓴 미소뿐이었어. 그렇게 꿈을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고 살던 와중에 재환이를 만났고. 재환이를 만나서 성운이는 진짜 수영을 잊은 것처럼 예전처럼 밝은 성운이로 돌아왔었어. 그러던 어느 날 재환이 이사 온 지 석 달이 지났을까 재환이가 우연히 나랑 관린이가 이야기하는 걸 들었어.
그날의 이야기.
“성운이 다시 밝아져서 다행이다-“
“그러게- 진짜 그때 일을 잊은 거라면 좋겠는데 말이야- 최소한 자기 탓이라고만 생각 안 했으면 좋겠는데“
“관린아..”
"그때 형 말 듣고 바다에 먼저 들어가지 말 걸.. 괜히 나 때문에..”
“야야.. 뭘 또, 너 지금 멀쩡한 거에 난 감사해.“
“그래도…”
“그게 지금 무슨 말이야?”
그때 그냥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갔으면 됐을걸. 생각해 보면 그것 도 내 욕심이었지 재환이가 성운이를 저렇게 밝게 만들어 놨으니 그때 그 트라우마도 없애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 내가 이기적이었지. 재환이가 왜 여기에 왔는지. 무슨 건강상 문제가 있는지 알면서도. 재환이의 꿈도 수영선수였데. 근데 어릴 때 사고를 당했는데 하필 어깨 쪽 부상이라 보이는 건 없지만 수영 선수처럼 어깨를 많이 쓰는 직업은 꿈도 못 꿔. 재환이에게 수영은 성운이처럼 인생의 전부였는데 한순간의 사고로 인생을 잃어버린 재환이도 성운이 못지않게 아니, 성운이 보다 더 힘들었을지도 몰라.
그런 재환이에게 큰 위로가 된 게 바다였어. 그 물에 뛰어들진 못하지만 큰 바다를 보기만 해도 자신이 그곳에서 헤엄치는 것 같고 마음 이 탁 트인데 그래서 그런 재환이를 위해 재환이 부모님은 서울을 벗어나 바다가 있는 지역으로 이사를 다니셨는데 그때마다 무슨 일이 있었나 봐 그래서 결국 조용한 이곳 섬마을로 오게 되었데. 같은 꿈을 꾸고 성운이 못지않게 그 꿈으로 인해 상처를 받은 아이인 걸 알면서도 나는 이기적이게 무슨 일이냐 묻는 아이에게 이실직고했고 그 후에 본인 몸도 성치 않으면서 성운이를 위해, 성운이가 다시 일어 날 수 있게 발 벗고 나서는 그 아이를 말리지도 않았어. 재환이는 그 말을 듣고 자신의 어깨를 숨기며 성운이의 트라우마를 벗기려 노력했어.
신기하게 성운이는 관린이와 내 말에는 고개만 저었으면서 재환이 말에는 마음을 여는 거 있지? 그게 얼마나 신기했는지.. 재환이는 성운이를 위해서라면 뭐든 했어. 어깨 통증을 숨기면서 같이 헤엄도 치고, 자신의 꿈을 져가며 성운의 꿈을 지지해 주고.. 덕분에 성운이는 다시 자신의 꿈을 돼 찾았지만 너무 무리하게 성운이에게 헌신을 해서일까 재환이의 어깨 통증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결국 서울로 치료를 받으러 갈 수밖에 없었어. 그런데 하필 재환이 떠나는 날이 성운의 첫 시험이 있던 날이었어 재환이는 성운이 자신의 상황을 알게 되면 시험을 포기할게 뻔하다고 몰래 가겠다고, 시험이 끝나게 되고 후에 저를 찾는다면 그때 알려주라고 그리고 혹시나 그 전에 저를 찾는다면 절 때 그때는 어깨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하곤 그날 그렇게 떠났어.
하지만 애석하게도 성운이는 그때 시험을 못 봤어. 성운이가 자기는 재환이가 없으면 시험을 볼 수가 없데. 나랑 주변 사람들이 경기 끝나고 말하자고 경기만 끝내고 오라고 말리는데도 다 무시하고 경기 시작 직전까지 미친 듯이 재환이만 찾았어 사람들이 겨우 성운이를 말리고 성운이는 반쯤 정신을 놓은 채 시험장에 들어갔지만 역시나 시험에 집중할 리가 없었지 시험을 제대로 망친 성운이는 그대로 집에 도착할 때까지, 집에 도착해서도, 그 후 일주일간 내내 울었어. 말없이 떠난 재환이를 원망하면서. 성운이는 그 후로 완전히 수영을 접고 알바만 미친 듯이 했어. 자신은 좋아하는 일,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들이 자기를 떠난다고. 성운이는 소중한 사람이 가장 중요할 때 말없이 떠난 게 트라우마로 심어진 거야.
그래서 그렇게 일주일간 울고 난 후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재환이란 사람이 있었냐는 듯이 행동하며 관심 없는 일만 골라 하고 관심이 조금이라도 생기려 하면 금방 관 둬 버렸어. 성운이 지금은 저렇게 밝아 보이지만 아직도 마음은 곪아 있을 거야. 내가 몇 번이곤 재환이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었지만 그때마다 관린이가 말렸어. 잠시라도 성운이가 수영하는 모습을 보여준 재환이에게 고마운 관린이는 재환이에게 예의가 아니라며 직접 말할 때까지 기다리자며 나를 말렸어.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는 성운이는 지금까지 재환이를 저렇게 증오할 수밖에 없던 거야. 자신이 싫어서 떠난 거라, 성운의 말마따나 버린 거라 생각하니까.
“아…”
“지성이 형! 박지! 뭔 말을 그렇게 하니. 빨리 마감 안 합니까. 배고파요-"
“어어-. 그러니까 너도 입단 속 잘하고. 절대 성운이한테 말하면 안 된다."
헐.. 성운이 형한테 그런 일이 있었.. 와.. 수영 몰랐.. 헐… 그럼 재환이 형 … 지성은 적잖이 충격을 받은 듯 혼자 중얼거리며 멍 때리는 지훈을 향해 혀를 한번 차고 저를 부르는 우진에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유유히 걸어갔다. 지훈은 문 잠근다고 나오라는 관린의 쓴소리를 듣기 전까지 그 자리에서 넋을 놓은 채 멍하니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지성이 형… 근데 내 입 내가 컨트롤이 안돼.
***
와아아-
“수고하셨습니다-“
으아- 힘들다. 몇 시간씩 앉아있는 건 역시 적성에 안 맞아. 기지개를 편 후 입구에 기대어 신발을 욱여넣던 성운은 우당탕 큰 소리와 함께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뒤를 돌았다. 어, 순영이랑 진영이네.
“선생님 안녕히 가세요-“
"선생님 다음에는 짱구 읽어 주세요"
“그래- 순영이 잘 있어~ 그리고 진영이 넌 만화는 무슨 만화야 선생님이 다음에도 재- 미는 동화 책 가져올게요-“
“치이-“
"어이구- 진영이도 잘 있어- 순영이랑 싸우지 말,”
“하샘,”
“네?”
누가 선생님 찾으시는데, 저어기- 순영이와 진영이를 뒤따라 나오던 해님 반 선생님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며 나가려는 순간 해님 반 선생님의 말에 벽에서 등을 떼 해님 반 선생님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돌렸고 그대로 표정을 구겼다.
“성운아 안녕”
성운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그렇게 저를 보기 싫다는 말을 들어놓고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재환이 말간 얼굴로 서 있었다. 가볍게 손을 들어 인사한 재환은 성운에게 향하던 시선을 그 뒤에 있는 세 사람에게로 돌렸고 아이들과 선생님에게도 가볍게 목례를 하며 사람 좋은 미소를 띤 채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안뇨옹”
“어 안,”
"네가 여길 왜 와”
성운의 뒤에서 뿅 하고 튀어나온 두 아이가 재환이에게 경쾌하게 인사를 했고 뒤이어 재환이 그 아이들에게 눈 높이를 맞추며 인사하려 하자 성운이 급하게 두 아이를 제 뒤로 숨기며 재환에게 낮게 으르렁거렸다.
“서운하네- 내가 애들 잡아먹기라도 할까”
“적어도 너라면 가능하겠지”
정주는 척하면서 버리는 거. 네 취미잖아. 성운의 낮은 목소리에 작게 한숨을 내뱉은 재환은 아이들에 눈높이를 맞추려 굽힌 무릎을 털어내며 성운을 불렀다.
“성운아”
“내 이름 부르지 말랬지”
“성운아”
“입 닥…!”
“선샌니임..”
연신 제 이름을 부르는 재환에 결국 성운이 한마디 하려 입을 열려다 뒤에서 제 옷을 꼬옥 잡아오는 손길에 아차 싶어 입을 꾹 다물었다. 굳은 표정을 풀고 뒤를 돌아 순영이와 진영이에게 미소를 지어주곤 상황 파악이 덜 되어 어리둥절한 해님반 선생님을 불러 안으로 들여보냈다.
“놀라게 해서 미안해- 내일 보자. 선생님,”
“아, 네..!”
허둥지둥 진영이와 순영이를 데리고 교실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성운은 아이들에게 짓던 표정을 지우고 가만히 자신을 쳐다보던 재환의 시선을 무시하며 그 앞을 지나갔다.
성운아
성운아-
성-운-,
“야 언제까지 따라올 거냐?’
“음- 네가 돌아 봐 줄 때까지?”
“미친놈”
터벅,터벅
타다닥
터벅, 터벅
타다닥닥
터벅, 터벅
타다,
아 좀-!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한걸음 뗄 때마다 쫄래쫄래 따라 들려오는 재환의 발걸음 소리에 결국 성운이 제자리에 멈춰 서 허공에 소리를 질렀고 그러자 쫄쫄 따라오던 재환이 흠칫 놀라 제자리에 멈춰 섰다.
“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데, 더 이상 네 얼굴 보기 싫댔잖아”
“……”
“이제 좀 잊어 보겠다는데, 나 좀 살자는데 왜 또 나를 괴롭히는 건데 …”
“미안해…”
그놈의 미안해 이제 질린다 질려. 별다른 말없이 사과만 하는 재환의 목소리를 듣다 줄곧 재환을 등지고 서 있던 몸을 돌려 재환을 쳐다봤다.
“그래, 그럼 어디 한번 말해봐. 왜 날 버렸어?”
“아니야 성운아… 그건 오해,”
“오해? 네가 그렇게 날 버리고 간 게 내 오해야? 그래, 그렇다고 치자. 그럼 말해봐 내가 뭘 오해한 건데.”
“……”
“응? 말해봐. 내 오해하며.”
“…. 말… 못해”
하, 하하하, 하하 재환의 말에 실소를 터뜨린 성운은 울음을 참는 것인지 화가 나서인지 붉게 충혈된 눈으로 재환을 노려봤다. 너 진짜 최악이구나
“하, 말 못해? 거봐. 맞으니까 말 못하잖아”
“…성운아”
“이거 놔.”
재환의 말에 기가 찬다는 듯 말을 끝낸 성운이 몸을 돌려 걸음을 떼려 해 재환이 다급하게 붙잡았지만 성운은 차갑게 잡힌 손목을 털어냈다.
“두 번 다신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
내가 죽어버릴 거야.
성운은 다시 발걸음을 뗐고 재환은 그런 성운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못 한 채, 붙잡지도 못하고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기적이라 미안해… 성운아.”
***
벌써 이주야. 성운이 무슨 일인지 아무런 말도 없이 단독방에 딸랑 ‘당분간 좀 쉴게요’라는 톡 하나만 보내두고 사라진 게 벌써 이 주전이다. 요 며칠 불안한 듯 가게 일에 집중을 하지 못하던 지훈은 오늘도 무슨 고민이 있는지 카운터 주변을 맴돌다 자리에 앉았다를 반복하다 무언가를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 덕에 카운터에서 졸던 우진도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벌떡 고개를 들었다. 뭔데 뭔데 뭔데, 뭔 일이고.
“안되겠어. 지성이 형 나 잠시 나갔다 올게-!”
“어? 지훈아, 박지훈! 어디 가는데?!”
“잠시만! 한 시간만!! 땡큐!!!!”
“야-!!”
뒤통수에 빼액 소리를 지르는 지성을 무시하고 급하게 달려 지훈이 도착한 곳 은 다름 아닌 성운의 또 다른 일터, 바다 유치원이었다. 당당하게 뛰어왔지만 막상 들어가려니 겁이 나는지 제대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교문에서 알짱거리자 마침 쉬는 시간인 건지 유치원 앞에서 놀던 아이들 중 하나가 지훈에게로 다가왔다.
“아저씨 모에 요오?”
갑자기 얼굴을 들이미는 아이에 깜짝 놀란 지훈이 나가떨어지자 그 모습을 보던 아이가 까르륵 까르륵 웃는다. 뭐, 뭐야 갑자기 근데 아저…!
“치… 오늘은 바람 아저씨 아니네… 아저씨는 뭐 하러 왔어요?"
웃던걸 멈추곤 지훈의 얼굴을 살짝 훑어본 아이는 갑자기 의심 가득한 표정을 짓더니 양 옆구리에 손을 얹곤 뭐 하러 왔느냐 묻는다. 야야.. 나 이상한 사람 아니야.. 근데 아저씨라니,
“아니, 꼬마야 내가 어딜 봐서 아저… 꼬마야 이렇게 젊고 잘생긴 아저씨 봤니? 오빠야 오. 빠.”
“아… 네”
어쭈, 저 꼬맹이가… 얄밉게 눈을 흘기는 아이에 한대 콩 쥐어박아주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어 들어 가지도 못하는데 꼬맹이라도 캐서 뭐라도 얻을까 싶어 무릎을 굽혀 아이와 눈 높이를 맞췄다. 근데 아까 뭐? 바람 뭐?
“바람 아저씨가 누군데?”
“선생님이 다른 사람에 대해 물을 땐 자기소개 먼저 하능 거랬어요!"
얼씨구
“으흠, 큼. 내 이름은 박지훈이야 스무 살. 그럼 꼬맹이 너는 누구냐”
“저어는 여섯 살! 수녕이에요!”
“엉, 그래 수녕…아. 바람 아저씨는 누구야?”
“맨날 이 시간에 저어기에 서서 우리 유치원 보다가 가는 아저씨 있어요 눈은 이렇게 쳐져가지고.."
순영은 아까 지훈이 서 있던 반대쪽 입구를 가리키다 손을 제 눈가로 가져가 추욱 내려 꽤 억울한 인상을 만들어 냈다. 쳐진 눈... 어디서 봤는데..
“근데 성운 선생님은 바람 아저씨가 밉나 봐요.. 예전에 막막 성운 선생님이랑 두 싸우고 그랬어요. 나는 좋은데.. 아저씨한테 가면 맨날 맛있는 젤리 주거든요 헤헤”
이야기에 집중을 하는 지훈의 모습에 신이 났는지 순영이는 더 조잘조잘 떠들어 댔고 지훈은 그런 순영의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어주며 생각했다. 그 바람 아저씨가 재환이구나라고.
“근데 왜 바람 아저씨래”
“지훈이..?”
“어 형!”
순영이 무어라 더 말하려 입을 여는 순간 유치원 문이 열리더니 물음표가 가득 찬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며 성운이 걸어 나왔고 그 모습을 발견한 순영은 성운에게로 오도도 뛰어가 안겼다. 그런 순영을 보고 입맛을 다시던 지훈은 아직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저를 보는 성운에게 말했다.
“잠깐 시간 돼?”
"웬일이야? 네가 유치원까지 찾아오고?”
우와 – 진짜 조그마하다… 인원이 인원이다 보니 비는 방이 많아 시간 좀 내달라는 지훈을 빈 교실에 데려온 성운은 제가 커피를 타 오는 동안 계속 조그마한 의자와 책상에 감탄하고 있는 지훈의 모습에 살포시 웃음을 지어 보이곤 커피를 건넸다. 어, 땡큐.
“아 그게…”
“무슨 일 있어?”
답지 않게 손가락까지 꼬물거리며 자신의 눈을 피하는 지훈의 모습을 의아하게 느낀 성운이 고개를 갸웃거리곤 들고 온 커피를 입으로 식히며 천천히 마셨다.
“형! 요새 왜 가게 안 나와?”
“아.. 좀 피곤해서.. 그래서 좀 쉬려했는데 여기 유치원 애들이 걱정돼서 잠을 잘 수가 있어야지.”
푸흐- 뭐 대단한 말이라도 하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평범한 질문을 하자 성운은 픽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를 내며 대답했지만 이어지는 지훈의 목소리에 표정을 굳힐 수 밖에 없었다.
“형”
“엉?”
"웬만하면 재환이 형 받아줘라”
“……..”
“재환이 형 형한테 많이 미안,”
“…뭐야.. 또 김재환이야?”
또 김재환이다.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김재환. 연속해서 제 뺨을 후려치는 지훈의 말에 기분이 팍 상한 성운은 미간을 팍 구기곤 자리에서 소리 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할 말 없다. 그냥 가”
“형! 괜한 자존심 세우지 마!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후회? 그건 김재환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다. 애초에 잘못한 사람도 김재환이고 후회할 사람도 김재환 뿐이다. 더 이상 들어봤자 제 기분만 상할 것 같아 소리 나게 컵을 내려놓은 성운이 여전히 앉아서 저를 쳐다보는 지훈의 시선을 무시한 후 휙 돌아서서 발걸음을 뗐다. 뒤이어 들려오는 지훈의 말에 다시 발이 묶이고 말았지만.
“재환이 형이 왜 떠났는지 알아? 형 때문이야"
“뭐?”
“형 도와주다 다시 어깨에 염증 재발한 거고 치료가 너무 시급한데 형 신경 쓰일까 봐 미루고 미루다 결국 몰래 간 거고 “
어깨? 염증? 치료? 생판 처음 듣는 말에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성운이 몸을 돌려 급하게 지훈을 향해 손을 뻗어 양 어깨를 잡아챘다.
“그게 무슨 알아듣게 말해!”
“재환이 형 어렸을 때 사고로 무리한 운동 같은 거 하면 안됐었데 그런데 형 다시 일으켜 주고 싶어서 그 무리를 한 거야”
“…. 무슨 그런 바보 같은,”
거짓말. 거짓말이다. 여태 한 번도 들은 적 없는 거짓말. 그런 말 나한테 하지도 않았잖아. 그런 낌새도 없었는데,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 지훈의 알 수 없는 말에 성운은 머리가 빙글빙글 돌아 정신이 아찔해져 왔다.
“그래 바보지, 그 바보가 아직도 형 생각 형 걱정 밖에 없어서 여기 다시 돌아왔잖아”
“약속했다며 수영 계속 같이 하기로”
“그 약속 지키려고 재환이 형 온 거잖아”
“형, 재환이 형 용서해주라”
말도 안 돼. 왜 나한테 말 안 해줬어?
왜?
왜?
왜?
예고 없이 들어온 지훈의 말들에 성운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찔해지는 기분에 휘청거리는 걸 지훈이 받아 앉히자 성운이 책상에 고개를 박았다. 저 말이 사실이면 난…난..
지이이 윙- 지이이 윙-
아 괜히 말했나.. 생각보다 걱정스러운 성운의 반응에 큰소리로 떵떵 거려 놓곤 되려 어쩔 줄 몰라 하던 지훈은 왼쪽 주머니에서 별안간 진동소리가 울리자 속으로 나이스 타이밍을 외치며 잠시 성운의 눈치를 보곤 급하게 전화를 받았다.
“야 박지, 어디고”
“아 왜, 지금 바빠서-“
"너 벌써 까묵읐나? 지금 재환이 형 간다는데”
“뭐?!”
“아 귀청이야 왜 소리를 지르고 지랄이고. 그제부터 계속 말 했다 이거, 맨날 얼빵-하게 있더니 네 못 들었나?”
뭐??? 지훈은 전혀 모른다는 듯 귓속에 그대로 꽂혀오는 우진의 목소리를 부정했다. 가긴 갑자기 어딜? 왜? 뭐야?
“무슨 말을 했, 가긴 어딜?!?!”
“얘 진짜 뭐고? 어디긴 서,”
“뭐라고 우진아? 김재환이 뭐?”
“헐 성운이 형?”
통화 소리가 꽤 컸는지 전화를 뚫고 나오는 우진의 목소리에 재환의 이름이 섞여 나오자 성운은 갑자기 고개를 팍 쳐들곤 지훈의 폰을 뺏어들었다. 거기가 어디야.
탁탁 탁탁,
‘아.. 그게… 지성이 형이 말하지 말라 했는데… 아 박지훈 금마는 왜 거기 있어 가지고..’
“삼촌! 나 차 좀 빌릴게!!!!”
‘재환이 형님 서울로 다시 돌아가신답니다’
빨리빨리 빨리
‘방금 재환이 형님 오셔서 인사하고 가셨어요. 근데 박지훈 금마가 없어가지고 전화해 봤더니..’
탁탁탁탁,타탁
‘2시 뱁니다. 한 이십 분 정도 남았는데.. 지금 차로 가도 아슬 아슬할 것 같은데.. 설마 가시게요?’
『오후 2시 출항 선이 곧 출항할 예정이오니 대기 중인 승객 여러분은 안내원의 지시에 따라 신속-』
‘뭔 일 인진 모르겠지만 이번에 만나면 화해 잘 하고 오십시오’
“김재환!!!!”
“하성운…?”
미친 듯이 달려와 제시간에 도착한 성운은 얼굴이 땀 범벅이 된 것도 모른 채 하나 둘 배에 탑승하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익숙한 뒤통수가 보이자 재환의 이름을 불렀고, 그 목소리에 의아한 표정을 지은 재환이 고개를 돌려 성운을 마주 봤다.
“미안해!!”
“성운,”
“내가 미안, 하니까 가, 지 말라고 이 멍청,아-흐어어엉!”
“성운아 왜, 왜 울어”
결국 성운은 재환의 얼굴을 보자마자 여러 가지 감정이 북받쳐 사람들이 비집고 들어가는 그 틈 한가운데 서서 팡- 눈물을 터뜨렸고 그 모습을 보던 재환은 갑자기 눈물을 터뜨리며 주저 않는 성운에 깜짝 놀라 제 짐을 그대로 던져두고 성운을 향에 달렸다.
“이 나쁜노마하엉, 나만, 나만 나쁜 놈 만들고, 어? 그르면 좋냐? 어?”
“무슨 말,”
“너 어깨!!! 왜 말 안 했어!!”
“..들었구나”
무릎을 굽혀 쓰러진 성운의 어깨를 토닥이며 성운의 칭얼거림을 듣던 재환은 칭얼거림 속에 섞여있는 이야기들에 아차 싶어 고개를 돌렸다. 성운이가 알면 안 되는데.
“들었구나~~~~~??? 너 내가 딴 사람한테 안 들었으면 평생 나 나쁜 놈 만들었겠다?”
“아, 아냐 그런 거”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나 땜에.. 괜히 나 땜에..”
이럴 줄 알았다. 성운이 알게 된다면 괜히 죄책감 가지며 자기 탓을 할 거라 생각한 재환은 가능한 이 일을 최대한 비밀로 하고 싶었다. 그랬는데…
“이럴까 봐 말 안 했어 괜히 네가 죄책감 가질까 봐 “
“……”
“네 탓 아냐 성운아 다친 것도 나고 이 상태로 너 도와주겠다고 한 것도 나야”
“나는 그게 행복했다 성운아.”
『2시 출항 선을 탑승하실 탑승객-』
“성운아, 나”
배가 곧 출항한다는 안내 방송이 울리자 재환은 굽힌 무릎을 털며 일어났고 성운은 그런 재환의 손목을 다급하게 붙잡았다.
“가, 가지 마..! 재환아 제발 가지 마 나 너 없으면 못 살아 재환,”
눈물 범벅이 되어 다급하게 저를 부르는 성운을 쳐다보던 재환이 아직까지 주저앉아있는 모습에 성운의 겨드랑이 사이에 두 팔을 끼워 일으켰다.
“성운아 일어나”
“재환아 제발..”
“나 어디 안가 그러니까 일어나자 응?”
“재환아 가지.. 응?”
"어차피 너 떔에 온 건데 네가 불편해할까 봐 가려 했던 건데… 네가 이러면 내가 어떻게 가”
사실이었다. 애초에 여기에 온 것도 성운 때문이었고 슬프지만 떠나려 했던 것도 성운 때문이었다. 저를 싫어하리라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저를 보는 것조차 꺼려 하는 성운의 모습에 더 있어봤자 성운만 불편할 것 같아 그냥 조용히 서울로 다시 올라갈 생각이었다.
“흐어엉, 너 진짜 미워허엉”
“나 미워? 꼴도 보기 싫어? 어디 가서 콱”
아이처럼 엉엉 울며 저에게 투정 부리는 모습에 재환은 드디어 예전처럼 돌아온 것 같아 슬슬 장난을 치려 농담을 하는데 그 모습에 붉어진 두 눈으로 재환을 노려보던 성운은 얄미운 재환의 얼굴을 양손으로 붙잡아 입술을 부딪혔다.
쪽-
“너 시끄러워…”
민망한 소리와 함께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에 재환이 넋을 놓자 더 민망해진 성운이 붉어진 두 귀를 뒤로한 채 빠른 걸음으로 돌아서 걸었고 그 모습에 겨우 정신을 차린 재환이 웃음을 참느라 볼록한 두 볼을 움찔거리며 허둥지둥 짐을 챙겨 성운을 불렀다.
“성운아-! 하성운같이 가!!”
홀로 남은 바다는 외로운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렇게 한참을 바다가 울고 있을 때 어디선가 바다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바다야- 바다야’
‘왜 그렇게 슬프게 우는 거니’
바다는 계속해서 서럽게 울면서 말했어.
‘나는 너무 외로워’
‘하지만 나는 움직일 수도 없어 움직이는 방법을 모르거든’
‘움직일 수만 있다면 혼자서라도 저 멀리 자유롭게 여행을 떠날 텐데’
‘나는 바람이야’
‘내가 도와줄까?’
바람과 함께 하게 된 바다는 더 이상 외롭지 않게 되었어.
이제 무슨 일을 하든 바람이 곁에 있거든
더 이상 외롭지 않은 바다는 더 이상 울지 않아.
바다는 더 이상 울지 않는다 fin.